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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20,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 — 지상명령을 감당하는 힘

누군가와 성경을 읽기로 약속하고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먼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나 싶습니다. 지상명령은 이런 우리에게 더 큰 자신감을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명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약속을 주셨는지 보게 합니다.

펼친 성경을 앞에 놓고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식탁에 둘러앉아 성경을 공부하는 현대의 모임. 함께 말씀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진: WELSTech Podcast · CC0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마태복음 28:18-20에서 예수님은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밝히신 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자신이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 사명 끝에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약속이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제자를 세우는 사람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 살펴봅니다.

함께하심의 약속은 지상명령과 붙어 있습니다

성경 직접 인용은 개역한글을 사용합니다. 아래 인용 외의 본문 설명과 적용은 성경을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개역한글

이 약속을 편안한 기분을 얻는 문장으로만 읽으면, 바로 앞의 명령과 연결된 뜻을 놓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말씀을 배워 지키게 하십니다. 함께하심은 그 길을 걸어가는 제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활동이면 무엇이든 예수님이 보증하신다는 뜻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이 약속을 섬김의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보상으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권세를 가지신 자신을 밝히시고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주님을 대신하는 주인이 아니라, 주님의 권세 아래서 자신도 배우며 다른 사람을 돕는 제자입니다. 사명의 크기보다 그것을 맡기신 분의 신실하심을 먼저 바라보게 됩니다.

펼친 성경과 그 위에 놓인 펜
펼친 성경 위에 놓인 펜. 말씀을 읽고 삶에 적용하는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Ryk Neethling from Melbourne, Australia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부족한 제자들에게 먼저 다가오십니다

마태복음 28:16-17에는 갈릴리의 산에 간 열한 제자가 나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경배했다는 기록 곁에는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말이 함께 있습니다. 본문은 그 의심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각 사람의 마음속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심리를 상상하여 확정하기보다, 그런 기록 다음에 예수님의 말씀과 사명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8에서 예수님은 가까이 나아와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완벽한 확신이나 탁월한 말솜씨가 사명의 근거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 근거입니다. 준비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유능해졌다고 느낄 때까지 순종을 끝없이 미룰 이유는 없다는 뜻입니다.

함께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질문을 만나면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음 모임까지 본문을 더 살피고, 믿을 만한 교회의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권위를 잃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내 대답에 의존시키기보다, 나와 그 사람이 함께 주님의 말씀 앞에 서도록 돕는 길입니다.

푸른 갈릴리호수와 주변 언덕의 현대 풍경
갈릴리호수의 오늘날 풍경. 마태복음 28장의 만남이 있었던 산의 정확한 위치를 보여 주는 사진은 아니다. 사진: Luiz Pantoja from São Paulo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임마누엘을 말하는 복음서가 함께하심의 약속으로 끝납니다

마태복음 1:23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뜻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대목에 등장한 함께하심이 마태복음 28:20의 마지막 약속과 이어집니다. 이를 함께 읽으면, 지상명령이 예수님과 떨어져 홀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아님을 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은 교사가 항상 특별한 감정을 느끼거나 모든 질문의 답을 즉시 떠올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기분의 강도를 약속의 증거로 삼지 않습니다. 우리가 붙드는 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가 메마르고 만남의 열매가 더디게 보여도, 그날의 느낌만으로 주님이 떠나셨다고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16-18에서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대목은 마태복음의 문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본문은 아니지만, 떠나심을 앞둔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보여 줍니다. 제자의 삶은 혼자 결심을 유지하는 일에 갇히지 않고, 주님의 돌보심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돌기둥 조각과 석조 구조물이 남은 고린도 유적
오늘날 촬영한 고린도 유적. 사도행전 18장의 배경 도시를 떠올리게 하지만 바울이 말씀을 전한 정확한 장소를 증명하는 사진은 아니다. 사진: Erik Drost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고린도의 바울은 두려움 속에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8:1-8은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난 바울이 일하며 회당에서 가르친 일, 반대가 일어난 일, 말씀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이 흐름은 지상명령의 대상이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실제로 말씀을 듣고 믿으며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임을 보여 줍니다. 바울의 사역에도 동료와 노동, 가르침과 반대가 함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8:9-11에서는 주님이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말하며 잠잠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바울과 함께하심을 밝히시고, 그 성에서 해를 입지 않을 것과 많은 백성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그곳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함께하심의 말씀이 실제로 가르침을 계속하는 힘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보호의 약속을, 모든 사역자는 언제 어디서나 신체적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장면과 대상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위험을 가볍게 여기라는 태도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맡겨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바울의 응답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도 주님의 도우심을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16-17에서 바울은 처음 변명할 때 자신을 도운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께서 곁에 서서 힘을 주셨으며, 자신을 통해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시려고 힘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은 외로움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외로운 자리에서도 복음을 전할 힘을 받았다는 고백과 함께 나타납니다.

디모데후서 4:18에서 바울이 바라보는 구원은 주님의 하늘 나라와 연결됩니다. 이를 자신의 계획이 언제나 성공하고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다는 말로 바꾸면 본문의 시선을 좁히게 됩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당장의 평가나 모임 규모로 재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동체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니 지친 사람을 혼자 두어도 된다는 결론은 바울의 고백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역자나 새 신자에게 연락하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동료의 돌봄을 받는 것은 주님을 덜 의지한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함정 안 성경공부 모임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는 네 여성
미 해군 USS Blue Ridge의 여성 성경공부 모임에서 함께 기도하는 참가자들(2009년). 사진: 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Cynthia Griggs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약속을 의지하며 한 사람과 배움의 자리를 만듭니다

마태복음 28:19-20의 명령에 응답하는 작은 시작으로, 이번 주 함께 말씀을 읽을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미 신앙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 만남을 구체적으로 약속할 수 있습니다. 아직 그런 사람이 없다면 교회 안에서 새 신자를 돕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웃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십시오. 상대를 서두르게 하거나 참여를 강요하는 방식은 피하십시오.

만남에서는 마태복음 28:18-20을 함께 읽고 세 가지를 차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에게 어떤 일을 맡기십니까? 그 일을 맡기며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먼저 본문이 말하는 것을 확인한 뒤 각자의 두려움과 순종을 이야기하면, 막연한 격려보다 말씀에 근거한 도움을 나눌 수 있습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뜻을 교회의 담당 사역자와 함께 배우도록 연결하십시오.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과는 배운 말씀을 어떻게 지킬지 구체적으로 나누십시오. 제자 삼음은 한 번의 대화로 끝나지 않으며, 누군가를 내 모임에 붙잡아 두는 일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따르도록 계속 돕는 일입니다.

다음 만남에는 정해 둔 실천이 잘되었는지만 확인하지 말고, 무엇이 어려웠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함께 들으십시오. 대답이 부족하면 본문으로 돌아가고, 잘못이 드러나면 서로 회개하며 다시 배우십시오. 이런 만남의 방식은 성경이 정한 유일한 절차가 아니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 응답하기 위한 적용 제안입니다.

낮은 돌담 옆 풀밭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 동행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현대의 사진이다. 사진: Carol Walker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마지막 날까지 함께하실 분을 의지합니다

마태복음 28:20에서 약속의 끝은 우리가 정한 교육 일정이나 올해의 목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사명을 맡기신 주님의 약속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은 지친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혼자 떠맡으라는 압박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며 공동체와 함께 맡겨진 순종을 이어갈 근거가 됩니다.

오늘 나눌 질문을 하나 남겨 보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의지하여, 이번 주 누구와 어떤 말씀을 함께 배우겠습니까? 큰 계획보다 정직한 만남 하나, 성경을 펴는 시간 하나, 서로를 위해 드리는 기도 하나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작은 시작도 모든 민족을 부르시고 세례와 배움과 순종으로 이끄시는 지상명령 안에 놓일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제 능력과 오늘의 감정만 바라보지 않고 주님의 권세와 약속을 의지하게 하소서. 모르는 것을 정직하게 배우고, 맡겨 주신 사람을 따뜻하게 돌보게 하소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제자의 길을 함께 걸으며,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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