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로 갈라지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롯은 눈에 보기 좋은 요단 들을 택했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세기 13:12, 개역한글). 본문은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세기 13:13, 개역한글).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약속의 땅을 따라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옮겨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창세기 13:18).
창세기 14장은 그 갈림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근동의 왕들이 벌인 전쟁에 소돔이 휩쓸리고, 롯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아브람은 조카를 구하러 밤길을 달려가고, 돌아오는 길에 두 왕을 만납니다.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와 그를 축복한 살렘 왕 멜기세덱, 그리고 전리품을 내밀며 거래를 제안한 소돔 왕입니다. 이 장은 짧은 전쟁 기록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훗날 시편 110편과 히브리서 7장에서 이 장면으로 다시 돌아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본문 — 창세기 14장 (개역한글)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소돔왕 베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제 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소돔왕과 고모라왕과 아드마왕과 스보임왕과 벨라 곧 소알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곧 그 다섯 왕이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과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창세기 14:1-12, 개역한글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창세기 14:13-16, 개역한글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찌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창세기 14:17-24, 개역한글
문맥 — 갈라선 두 사람,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창세기 14장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동방의 네 왕과 요단 평지의 다섯 왕이 벌인 전쟁과 롯의 포로 됨(창세기 14:1-12), 이어서 아브람의 추격과 구출(창세기 14:13-16),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은 두 왕과의 만남(창세기 14:17-24)입니다.
이 장은 앞뒤 장과 단단히 맞물려 있습니다. 13장에서 롯은 소돔 쪽으로 장막을 옮겼을 뿐이었지만, 14장에서 그는 이미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로 불립니다(창세기 14:12). 소돔 가까이 머물던 사람이 어느새 소돔의 주민이 되었고, 소돔의 운명이 곧 그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또 14장 끝에서 아브람이 소돔 왕의 재물을 거절하자, 15장은 바로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 15:1, 개역한글). 사람이 주는 보상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친히 그의 상급이 되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흐름을 기억하며 본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강해
1. 열국의 전쟁 속에 사로잡힌 롯 (창세기 14:1-12)
본문은 낯선 왕들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에서 온 네 왕과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의 다섯 왕입니다. 전쟁의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창세기 14:4, 개역한글). 12년 동안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평지의 왕들이 13년째에 등을 돌렸고, 14년째에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이 원정에 나섭니다. 그들은 여러 족속을 치며 세일 산과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른 뒤, 돌이켜 가데스와 하사손다말의 족속들을 치고 싯딤 골짜기에서 평지의 다섯 왕과 맞섭니다(창세기 14:5-9).
싸움은 싱겁게 끝납니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왕과 고모라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창세기 14:10, 개역한글). 본문은 이 골짜기가 지금의 염해, 곧 사해라고 소개합니다(창세기 14:3). 오늘날의 사해 일대는 예로부터 물 위로 떠오르는 역청(아스팔트)으로 알려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 기록에서 아스팔트 호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역청 구덩이는 이 지역의 실제 모습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초점은 왕들의 전쟁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창세기 14:12, 개역한글). 롯이 눈으로 보고 택했던 물이 넉넉한 땅(창세기 13:10-11)은 전쟁이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그가 쌓아 올린 재물은 한순간에 남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롯을 버림받은 사람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는 훗날 소돔에서의 롯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베드로후서 2:8, 개역한글). 롯은 의인이었지만 잘못된 자리에 머물렀고, 그 자리가 그를 포로로 만들었습니다. 믿는 사람도 어디에 장막을 치느냐에 따라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문은 조용히 보여 줍니다.
2. 형제를 위해 밤길을 달린 아브람 (창세기 14:13-16)
소식은 도망한 한 사람을 통해 전해집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창세기 14:13, 개역한글). 이때 아브람은 13장 끝에서 단을 쌓았던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있었습니다. 롯은 스스로 아브람을 떠나 좋은 땅을 골랐던 사람입니다. 아브람에게는 그 선택의 결과는 롯이 감당할 몫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브람의 망설임을 한 줄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창세기 14:14, 개역한글). 13장에서 다툼을 막으며 했던 말, “우리는 한 골육이라”(창세기 13:8, 개역한글)는 고백이 이제 행동이 됩니다. 잠언은 이런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17, 개역한글). 아브람은 자기 집에서 기른 318명을 이끌고, 네 왕의 연합군을 쫓아 북쪽 끝까지 달려갑니다. 성경에서 단은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사사기 20:1)처럼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입니다.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창세기 14:15, 개역한글). 아브람은 사람들을 나누어 밤에 공격했고, 다메섹 너머까지 추격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본문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창세기 14:16, 개역한글). 아브람은 롯만 데려온 것이 아니라 소돔의 사람들과 재물까지 모두 되찾아 왔습니다. 그를 떠났던 조카도, 악하다고 기록된 성의 사람들도 아브람의 구출 덕분에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 하신 말씀, 곧 그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창세기 12:2-3)이 전쟁터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장면입니다.

요한일서는 이런 사랑을 한 문장으로 요구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 개역한글). 아브람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밤길을 달린 발걸음으로 나타났습니다.

3.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살렘 왕 멜기세덱 (창세기 14:17-20)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맞으러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으로 나옵니다(창세기 14:17). 그런데 소돔 왕이 입을 열기 전에 본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등장시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세기 14:18, 개역한글). 그는 왕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의 축복은 이렇습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세기 14:19, 개역한글). 이어서 그는 이 전쟁의 진짜 승리자가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창세기 14:20, 개역한글). 아브람과 그의 사람들이 밤길을 달려 싸웠지만,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넘겨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잠언의 고백과 같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 21:31, 개역한글). 아브람은 이 축복에 응답하여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창세기 14:20).
본문은 떡과 포도주가 무엇을 뜻하는지 더 설명하지 않고, 이 장면을 다루는 히브리서 7장도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거듭 주목하는 것은 멜기세덱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선포했는지입니다. 창세기는 멜기세덱에 대해 이 세 절 외에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이름을 잊지 않습니다. 훗날 시편에서 하나님의 맹세로 다시 등장합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편 110:4, 개역한글). 같은 시편은 이 왕이 원수 가운데서 다스린다고 노래합니다(시편 110:1-2). 살렘이라는 이름도 성경 안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시편은 살렘을 시온과 나란히 놓습니다.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시편 76:2,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이 두 본문, 곧 창세기 14장과 시편 110편을 함께 읽으며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먼저 이름의 뜻을 풀어 줍니다.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히브리서 7:2, 개역한글). 이어서 창세기가 그의 족보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브리서 7:3,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이 말의 뜻을 곧바로 스스로 설명합니다.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히브리서 7:6, 개역한글). 그의 제사장 직분은 혈통이나 율법의 계보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람으로,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이 바꾸어 주신 이름인 아브라함(창세기 17:5)으로 불리는 같은 사람이, 약속을 받은 조상임에도 멜기세덱에게 복을 받고 십분의 일을 드렸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의미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히브리서 7:7, 개역한글).
이 모든 설명은 한 분을 향합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브리서 6:20, 개역한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바뀌어야 했지만(히브리서 7:23),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브리서 7:24, 개역한글).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브리서 7:25, 개역한글).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을 축복한 왕이자 제사장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간구하시는 영원한 왕이자 대제사장을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4.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아브람 (창세기 14:21-24)
이제 소돔 왕이 말합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창세기 14:21, 개역한글). 겉으로는 후한 제안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창세기 14:22, 개역한글). 멜기세덱이 축복하며 부른 하나님의 이름에 아브람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더합니다. 멜기세덱이 찬송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바로 아브람이 벧엘과 마므레에서 예배했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창세기 13:4, 13:18).
그리고 거절의 이유를 밝힙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14:23, 개역한글). 아브람은 자신을 부유하게 만든 이가 소돔 왕이라는 말을 들을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했습니다. 불과 두 장 앞에서 그는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했고, 그 결과 바로에게서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약대를 얻었습니다(창세기 12:16). 그때와 비교하면 오늘의 아브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창세기 12:2). 그 복을 소돔 왕의 손에서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아브람은 자기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싸운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동맹인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몫은 그들이 취하게 했습니다(창세기 14:24).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대로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정당한 몫은 존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빈손으로 돌아온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바로 다음 장에서 친히 그의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5:1).
주제 — 창세기 14장이 성경 전체에서 갖는 의미
창세기 14장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동방의 왕들도, 아브람과 함께 싸운 사람들도 아닙니다. 멜기세덱과 아브람이 함께 고백한 천지의 주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입니다(창세기 14:19, 14:22). 왕들이 동맹과 배반을 거듭하며 땅을 차지하려 싸울 때에도, 하늘과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셨고 대적을 넘겨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창세기 14:20).
이 장면은 창세기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편 110편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을 약속했고(시편 110:4), 히브리서는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합니다(히브리서 6:20, 7:15-17).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 28:18, 개역한글). 이어서 그 권세를 근거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19-20). 아브람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창세기 12:3)은 영원한 왕이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안에서, 그분의 제자들이 모든 민족에게 나아가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적용
-
잘못된 자리에 있는 형제를 비난하기보다 구하러 가십시오. 롯은 스스로의 선택 때문에 포로가 되었지만, 아브람은 그 책임을 따지지 않고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우리 곁에도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무너진 형제와 자매가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요한일서 3:18)은 그들을 향한 구체적인 발걸음을 요구합니다.
-
이긴 뒤에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멜기세덱은 아브람의 용맹을 칭찬하지 않고,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창세기 14:20). 일이 잘되었을 때 그 공을 내 노력과 계획에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김은 여호와께 있다는 고백(잠언 21:31)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세상이 내미는 보상을 분별하십시오. 소돔 왕의 제안은 정당한 전리품처럼 보였지만, 아브람은 그 손에서 부를 받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손에서 무엇을 받느냐가 내가 누구를 의지하는 사람인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심을 믿는 사람은 한 실이나 신들메 하나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걸지 않습니다(창세기 14:23, 15:1).
-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멜기세덱은 한 번 나타나 아브람을 축복하고 사라졌지만,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히브리서 7:25). 지치고 넘어진 날에도 우리는 그분을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받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의지하여, 오늘 우리 곁의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세우는 사명으로 나아갑니다.
참고 자료
- bible.com — 창세기 14장 개역한글(KRV, 대한성서공회)
- bible.com — 창세기 13장 개역한글(KRV)
- bible.com — 시편 110편 개역한글(KRV)
- bible.com — 히브리서 7장 개역한글(KRV)
- bible.com — 마태복음 28장 개역한글(KRV)
- Wikipedia — Dead Sea
- Wikipedia — Dan (ancient city)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