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생각하면 물과 예식, 함께 축하해 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분에게는 아직 낯선 질문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일까요? 그날의 고백은 다음 날의 삶과 어떻게 이어질까요?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세례를 제자로 살아가는 길 안에 놓아 줍니다.
마태복음 28:18-20에서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자신이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례는 이 부르심 한가운데서 누구를 믿고 따르는지 드러내며,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새 삶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세례를 주라고 하신 명령의 의미를 이 전체 문맥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세례의 명령은 부활하신 주님의 권세에서 시작합니다
이 글의 성경 직접 인용은 개역한글을 사용합니다. 본문 설명과 적용 제안은 직접 인용과 구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개역한글
이 말씀을 받는 이들은 갈릴리의 산에 모인 열한 제자입니다. 마태복음 28:16-17은 그들의 경배를 기록하면서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합니다. 이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28:18). 제자들을 보내는 근거는 그들이 이미 완벽해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님의 권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준비할 때 먼저 바라볼 분은 예식을 이끄는 사람이나 세례를 받는 사람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신앙의 출발점을 자기 결심의 강도에만 두면, 연약함을 만날 때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 느낄 수 있습니다. 지상명령은 우리가 누구의 말씀을 듣고 누구를 따르는지 먼저 확인하게 합니다. 세례를 가르치는 공동체도 사람의 명성보다 예수님의 복음을 분명하게 전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분명히 합니다
마태복음 28:19은 세례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에 연결합니다. 제자를 삼는 사람이 자기 이름이나 자기 모임을 신앙의 중심에 놓도록 허락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례의 명령은 제자의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게 합니다. 한 교사에게 도움을 받았더라도 그 교사가 우리의 주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3:16-17의 예수님 세례 장면에서도 아들 예수님, 비둘기같이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성령, 아들을 기뻐하신다는 하늘의 음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이름을 내용 없는 예식 문구로 읽지 않도록 돕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와 제자들에게 명하신 세례의 모든 의미를 똑같다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각각의 문맥을 살피면서, 마태복음이 누구를 우리 앞에 보여 주는지 주목하는 것입니다.
세례 교육에서도 순서나 준비물만 설명하고 끝내기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가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함께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르는 것을 감추지 않고 질문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짧은 답을 외웠는지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고백의 뜻을 자기 말로 설명하도록 곁에서 도울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을 부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서게 하십니다
세례의 명령 앞에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19의 넓은 대상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문화나 출신이 다른 사람도 같은 주님을 배우고 따르도록 초대받습니다. 우리와 익숙한 사람만 제자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이 말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6-29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말하며,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각 사람의 삶의 처지가 모두 같아졌다는 관찰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누리는 신분과 하나 됨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세례를 축하하는 공동체에는 환대의 책임도 있습니다. 익숙한 말과 생활방식을 빨리 따라오는 사람에게만 자리를 내주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새로 온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교회 용어를 설명하고, 이름을 기억하고, 다음 모임에 함께 갈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은 작지만 구체적인 환대입니다. 이런 실천은 본문이 정한 유일한 절차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한 방법입니다.

세례를 기억하는 삶은 죄에 머무르지 않고 새 길을 걷습니다
로마서 6:1-4에서 바울은 은혜가 더하게 하려고 죄에 계속 머물러도 되는지를 묻고 분명하게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을 그의 죽으심과 연결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을 설명합니다. 세례에 관한 가르침이 일상의 행동과 만나는 자리입니다.
로마서 6:11-14은 이 설명을 실제 권면으로 이어 갑니다.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몸을 죄의 도구로 내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새 삶은 막연히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넘어, 내 몸과 말과 선택을 누구에게 드리는지 묻습니다. 세례의 날짜를 기억하는 것과 함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오늘을 사는 일도 중요합니다.
가령 사람을 낮추는 말을 반복해 왔다면 그 말을 멈추고, 잘못을 인정하며,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행동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부정직한 선택을 이어 왔다면 그 자리에서 정직을 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정 행동을 해내야 세례의 자격을 증명한다는 점검표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핑계로 죄에 머무르지 않고, 받은 말씀에 응답하며 배워 가자는 적용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을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돌봅니다
사도행전 2:37-42은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 회개와 세례에 관한 권면, 말씀을 받아 세례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이어지는 공동체의 생활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 떡을 뗌과 기도에 힘썼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에는 각자 알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12-13도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는 그림 속에서 세례와 한 성령을 말합니다. 이 문맥은 세례를 남과 상관없는 개인의 기념으로만 생각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새로운 신자를 돌보는 공동체는 행사 당일의 축하와 이후의 동행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울 자리, 기도할 동료,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28:20의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과 맞닿습니다. 세례는 배움의 종료식이 아닙니다. 먼저 믿은 사람도 계속 배우며, 새로 믿은 사람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섭니다. 돌봄은 상대를 내 방식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르도록 함께하는 일입니다.

이번 주, 세례의 고백과 오늘의 삶을 연결해 보십시오
세례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마태복음 28:18-20을 읽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의 담당 사역자와 이야기해 보십시오. 이미 세례를 받은 분이라면 로마서 6:1-14을 읽으며, 오늘 내려놓을 죄의 습관과 하나님께 드릴 행동을 구체적으로 돌아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돕는 분이라면 세례 이후에도 함께 말씀을 읽을 약속을 잡아 보십시오.
함께 나눌 질문은 단순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믿고 따르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맞이해야 할 사람에게 어떤 문턱을 만들고 있습니까? 이번 주 말씀을 따라 바꿀 행동은 무엇이며, 누구와 함께 기도할 수 있습니까? 답을 빨리 정리하는 것보다, 성경을 펴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먼저 마련해 보십시오.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마태복음 28:20의 마지막 약속은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며 가르치는 사명과 함께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 새 신자를 돌보는 사람, 오래 믿었지만 다시 순종을 배우는 사람 모두 이 약속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과 섬김은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세례의 명령을 따라가면 시선은 다시 예수님께 돌아옵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모든 민족을 부르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게 하시며, 자신의 말씀을 배워 지키는 길로 이끄십니다. 오늘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곁에 있는 한 사람과 함께 걸어 보십시오.
기도 주님, 세례의 고백을 소중히 여기며 누구를 믿고 따르는지 잊지 않게 하소서. 죄에 머무르려는 마음을 돌이켜 새 삶을 배우게 하시고,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 안에서 서로를 돌보며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