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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1-13,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제자를 세우는 기도의 훈련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그분께 “가르쳐 달라”고 명시적으로 청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1장에서 한 제자가 이렇게 여쭙니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1, 개역한글). 병 고치는 법도, 말씀 전하는 법도 아닌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제자훈련의 곁가지가 아니라 심장입니다. 예수님은 이 요청에 짧은 기도문 하나, 밤중의 비유 하나,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약속으로 답하시며 제자를 세우는 기도의 훈련을 여셨습니다.

펼쳐진 성경책
펼쳐진 성경 —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구했습니다(눅 11:1). 그림: Translators of the King James Bible. Eyre and Spottiswoode (publisher)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잔잔한 갈릴리 호숫가
갈릴리 호숫가 — 예수님은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눅 5:16). 사진: Berthold Werner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제자가 먼저 구한 훈련: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누가복음 11:1은 이 요청이 나온 정황을 분명히 밝힙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가 여쭈었다는 것입니다. 배움의 갈망은 강의실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삶을 목격한 데서 촉발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거듭 부각합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마가복음 1:35, 개역한글),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16, 개역한글), 그리고 열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는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누가복음 6:12, 개역한글)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삶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았고, 그래서 “우리에게도”라고 구했습니다. 제자훈련이 본을 보이는 데서 시작한다는 원리가 여기 있습니다 — 기도는 가르치기 전에 먼저 살아 내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오래된 올리브 나무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 나무(감람 산) — 예수님은 이곳에서 무릎 꿇고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눅 22:39-46). 사진: American Colony (Jerusalem). Photo Department, photographer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예수님이 주신 기도의 틀: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pattern)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누가복음 11:2-4, 개역한글)

많은 성도가 암송하는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9-13의 형태이며,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라는 송영도 함께 외웁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이 전하는 기도문은 이보다 짧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라는 수식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라는 간구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도, 송영도 없습니다(마태복음 6:9-13과 대조). 누가는 기도의 뼈대만 남겨, 기도가 화려한 문장이 아니라 몇 가지 분명한 방향임을 보여 줍니다.

그 방향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향합니다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다음에야 우리의 필요로 내려옵니다 — 양식, 용서, 시험. 기도는 내 필요의 목록을 들이미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를 먼저 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또한 누가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합니다(누가복음 11:3). 마태의 “오늘날”(마태복음 6:11)과 달리 날마다라는 말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지속적 의존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의 습관입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이 기도를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사셨다는 점입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밤, 예수님은 감람 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1-42, 개역한글)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누가복음 22:40, 개역한글)고 이르셨습니다. 이는 주기도문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11:4)를 예수님이 친히 사신 장면입니다. 가르치신 기도를 스승이 먼저 사셨습니다.

소박한 빵 한 덩이
떡(빵) —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눅 11:3), 그리고 밤중에 떡 세 덩이를 구한 벗의 비유(눅 11:5-8). 사진: Daniel J. Layton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끈질기게 구하는 기도: 밤중에 찾아온 벗

기도의 틀을 주신 예수님은 곧바로 비유로 기도의 태도를 가르치십니다. 한밤중에 벗을 찾아가 떡 세 덩이를 빌리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누가복음 11:5-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누가복음 11:8, 개역한글)

핵심은 “강청함”입니다. 잠자리에 든 벗조차 끈질긴 청을 못 이겨 일어난다면, 하물며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녀의 간구를 외면하시겠습니까. 이 가르침은 홀로 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누가복음 18:1, 개역한글) 과부의 비유로 다시 가르치셨고(누가복음 18:1-8), 바울은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개역한글). 제자의 기도는 응답이 더딜 때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낙심하지 않고 계속 두드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나무 문
낡은 나무 문 —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 사진: Kızıl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확실한 응답의 약속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누가복음 11:9-10, 개역한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한 번 하고 마는 명령이 아니라 계속 구하고 계속 찾고 계속 두드리라는 지속의 부름입니다. 앞선 벗의 비유가 그 지속을 그림으로 보여 주었다면, 이 약속은 그 지속에 확실한 보증을 답니다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7:7-11에도 있는데, 마태는 산상수훈에, 누가는 기도 교훈의 문맥에 배치했습니다. 기도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들으시는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빛과 펼친 두 손을 그린 삽화
위에서 내리는 빛과 펼친 손 — 기도의 가장 좋은 응답은 성령이십니다(눅 11:13).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기도의 가장 좋은 응답: 성령

그렇다면 아버지는 무엇으로 응답하십니까. 예수님은 사람 아버지의 마음에서 시작하십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1-13, 개역한글)

같은 가르침의 마태복음 병행구는 아버지가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합니다(마태복음 7:11). 그런데 누가는 그 “좋은 것”의 절정을 성령으로 밝힙니다. 기도의 가장 좋은 응답은 내가 원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신 성령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은 다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개역한글). 응답으로 주어진 성령이 우리를 다시 기도하게 하십니다. 제자훈련으로서의 기도가 궁극적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로 귀결되는 이유입니다.

맞잡고 기도하는 두 손을 그린 삽화
맞잡은 두 손 — 제자를 세우는 훈련은 결국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제자를 세우는 기도 훈련: 오늘의 실천

누가복음 11장은 기도를 가르치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본을 보이시고(모범) → 틀을 주시고(가르침) → 약속으로 격려하셨습니다(약속). 이 순서는 오늘 제자를 세우는 자리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 본을 보이십시오. 제자들의 갈망은 예수님의 기도를 본 데서 났습니다. 가르치는 자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 인도자의 기도가 가장 강력한 교재입니다.
  • 주기도문을 틀로 삼으십시오. 누가복음의 짧은 기도문은 그 자체로 훈련 도구입니다 —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를 먼저, 그다음 필요(양식·용서·시험)를 구하는 순서를 따라 자기 말로 기도하도록 이끄십시오. 화려함이 아니라 방향이 중요합니다.
  • 날마다, 끈질기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11:3)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처럼,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기도 시간을 함께 정하고 점검하십시오. 응답이 더딘 제목일수록 낙심하지 않고 함께 두드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눅 11:8; 18:1).
  • 성령을 구하십시오. 기도 훈련의 목표는 응답 목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11:13). 일대일이든 소그룹이든, 서로를 위해 성령을 구하는 기도로 마무리하십시오.

제자가 제자를 세우는 일은 결국 기도하는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라는 그 고백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될 때, 예수님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 먼저 본을 보이시고, 기도의 틀을 주시며, 반드시 들으신다는 약속으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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