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첫 문장은 논증이 아니라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개역한글). 창세기 1:1-5는 온 성경이 그 위에 서 있는 주춧돌과 같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세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빛과 어둠의 질서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를 다섯 절이 압축해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성경 암송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권할 만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암송 구절 — 창세기 1:1-5 (개역한글)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1-5, 개역한글)
다섯 절에 담긴 창조 신앙 — 네 가지 묵상 포인트
1. 태초에 하나님이 —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1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분이 모든 시간과 공간의 시작점에 서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창세기를 여는 첫 말 태초에는 요한복음의 첫 문장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개역한글). 요한은 창세기 1:1을 받아서, 그 태초에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자리에 함께 계셨다고 증언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한복음 1:3, 개역한글). 바울도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골로새서 1:16). 창세기 1:1을 외우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이심을 고백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2.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
사람은 이미 있는 재료로만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다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 개역한글).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재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이 선언은, 창조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음을 가르칩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로마서 4:17, 개역한글). 이 절을 암송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의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한 분 창조주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 혼돈 위에 임하신 성령
창세기 1:2는 혼돈과 공허, 흑암이라는 세 단어로 창조 이전의 상태를 그립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수면 위에 하나님의 신, 곧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생명을 지으시는 분이라고 거듭 증언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기 33:4, 개역한글)고 고백했고, 시편 기자는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편 104:30, 개역한글)라고 노래합니다. 무질서 위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며 질서와 생명을 준비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그림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삶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은 그 깊음 위에 운행하고 계십니다. 어둠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창세기 1:2가 주는 위로입니다.
4. 빛이 있으라 —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도구나 과정이 아니라 말씀으로 빛을 부르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장면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편 33:6, 개역한글),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편 33:9, 개역한글). 말씀하시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첫째 날의 빛을 복음의 빛과 연결합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린도후서 4:6, 개역한글). 태초에 어둠을 가르신 그 하나님이, 지금은 복음으로 우리 마음의 어둠을 가르십니다.

구절의 배경 — 창조 주간의 첫째 날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창조 주간 전체를 기록합니다(창세기 2:2-3). 그 가운데 창세기 1:1-5는 첫째 날에 해당합니다. 첫째 날의 창조는 빛이며,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각각 낮과 밤이라 이름을 지어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해와 달과 별을 보고 미혹되어 경배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신명기 4:19). 창세기는 그것들조차 넷째 날에 지음받은 피조물일 뿐이라고 선언합니다(창세기 1:14-19). 해가 지음받기 전에 이미 첫째 날의 빛이 있었습니다. 빛의 근원은 천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창세기 1:5, 개역한글)라는 후렴입니다. 이 후렴은 창조의 여섯 날 내내 반복되며(창세기 1:8, 13, 19, 23, 31),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리듬과 질서 속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서 굴러간다는 사실은, 암송하는 사람의 일상에도 같은 고백을 심어 줍니다.

왜 이 다섯 절을 외워야 할까
첫째, 이 본문은 성경 전체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창조를 바로 알아야 타락과 구속, 그리고 새 창조로 이어지는 성경의 큰 이야기가 보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1)은 창세기 1:1의 천지가 회복되고 완성되는 장면입니다.
둘째, 이 본문은 신앙의 뿌리 질문에 답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세상은 누구의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암송된 창세기 1:1은 즉시 대답할 수 있는 고백이 됩니다.
셋째, 어둠의 때에 붙들 수 있는 말씀입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위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영, 그리고 빛을 부르시던 그 음성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편 119:11, 개역한글)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께서 당신이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6). 마음에 둔 말씀은 필요한 순간에 우리를 붙드는 힘이 됩니다.
외우는 법 — 다섯 토막으로 나누어
다섯 절을 절 단위로 다섯 토막으로 나누어 외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 창세기 1:1 — 선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개역한글). 짧고 완결된 한 문장이므로 통째로 외웁니다.
- 창세기 1:2 — 상태: 혼돈·공허·흑암 세 단어를 먼저 붙잡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 개역한글)로 마무리합니다.
- 창세기 1:3 — 말씀: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1:3, 개역한글). 명령과 성취가 한 호흡임을 기억합니다.
- 창세기 1:4 — 평가와 구분: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4, 개역한글)와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창세기 1:4, 개역한글) 두 마디로 나눕니다.
- 창세기 1:5 — 이름과 리듬: 낮·밤의 이름 짓기, 그리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5, 개역한글)의 후렴으로 닫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으며 창세기 1:3을, 잠자리에 들며 창세기 1:5를 소리 내어 읊는 식으로 하루의 리듬에 붙이면, 저녁과 아침이 이어지는 본문의 질서가 몸에 새겨집니다.
적용을 위한 묵상 질문
- 나는 세상과 내 삶의 시작을 “태초에 하나님이”(창세기 1:1, 개역한글)로 고백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연과 불안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 지금 내 삶에서 “혼돈하고 공허하며”(창세기 1:2, 개역한글) 어둡게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인가? 그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신뢰하는가?
- 빛을 부르신 하나님이 내 마음에 비추신 복음의 빛(고린도후서 4:6)을 나는 누구에게 전하고 있는가?
-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 1:4, 개역한글)의 눈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