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 4절은 이스라엘이 발을 딛기도 전에 하나님이 미리 그어 두신 땅의 경계선입니다. 남으로는 광야, 북으로는 레바논, 동으로는 유브라데강, 서로는 지중해(대해) — 이 네 지점은 그 후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남깁니다. 이 약속은 정말 이루어졌을까요? 성경은 이 질문에 놀랍도록 정직하게 답합니다.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는 선언과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는 고백이 같은 책 안에 나란히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약속과 성취의 전체 그림을 성경 본문을 따라가며 살펴보려 합니다.

본문 — 여호수아 1:2-4 (개역한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여호수아 1:2-4, 개역한글)
모세가 죽은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슬퍼할 시간을 길게 주시는 대신 지경을 먼저 알려 주십니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약속은 이미 하늘에서 결정되었지만, 그 약속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도 같은 경계를 미리 일러 두었습니다.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하수라 하는 하수에서 서해까지라”(신명기 11:24, 개역한글). 여호수아 1장의 약속은 새로운 계시가 아니라, 모세를 통해 이미 주어진 말씀의 재확인이었습니다.
네 경계에 놓인 약속 — 광야에서 대해까지
본문이 그리는 지경을 하나씩 따라가면, 이 약속이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쪽 — 광야

지경의 남쪽 끝은 ‘광야’입니다. 오늘날의 네게브 사막 일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40년간 방황했던 바로 그 광야이기도 합니다. 약속의 땅은 광야와 무관한 곳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해야 다다르는 땅이었습니다.
북쪽 — 레바논

북쪽 경계는 레바논 산지, 백향목으로 유명한 그 산맥입니다. 훗날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 쓰일 백향목이 자라던 바로 그곳이 이스라엘 영토의 북쪽 한계선으로 제시됩니다.
동쪽 — 큰 하수 유브라데

동쪽 경계는 ‘큰 하수 유브라데’입니다. 이스라엘이 실제로 거주하던 가나안 땅에서 한참 떨어진, 메소포타미아를 관통하는 큰 강까지가 지경으로 언급됩니다. 이는 단순한 거주지의 경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미 주셨던 언약의 규모였습니다.
서쪽 — 해 지는 편 대해

서쪽 경계는 ‘해 지는 편 대해’, 곧 지중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바라보며 살게 될 서쪽 바다까지가 약속의 서쪽 끝입니다.
약속의 뿌리 — 창세기 15장의 언약
여호수아 1:4의 경계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아브라함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8-21, 개역한글)
아브람이 자식조차 없던 그 밤에, 하나님은 쪼갠 짐승 사이로 타는 횃불을 지나가시며 스스로 언약의 당사자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순종을 조건으로 한 쌍방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 홀로 맹세하신 언약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4은 이 언약이 잊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수백 년의 세월과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지나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신 말씀을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완전한 성취의 선언 — 여호수아 21:43-45

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여호수아 21:43-45, 개역한글)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가 끝난 뒤, 성경은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없는 문장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이 선언은 훗날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서 다시 메아리칩니다.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열왕기상 8:56, 개역한글). 세대가 바뀌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이 고백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성경이 정직하게 남기는 긴장 — ‘남은 땅이 매우 많도다’
그런데 같은 책, 불과 여덟 장 앞에서 성경은 전혀 다른 문장을 기록해 둡니다.
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여호수아 13:1, 개역한글)
여호수아 21장의 ‘하나도 남음이 없이’와 13장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는 서로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을 나란히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1장의 성취는 하나님이 ‘맹세하신’ 약속 —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시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시는 일 — 에 대한 성취이지, 가나안 땅의 모든 성읍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접수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여호수아 자신도 훗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편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뽑아 너희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여호수아 23:4, 개역한글). 정복은 완결이 아니라 각 지파에게 넘겨진 진행형 과업이었습니다.
사사기는 그 이후의 현실을 더 자세히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사사기 1:19, 개역한글). 단 지파와 아셀 지파, 므낫세 지파도 각기 쫓아내지 못한 족속들과 함께 살았다고 사사기 1장은 담담히 기록합니다. 이 남은 민족들에게는 뜻밖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사사기 3:1, 개역한글) — 하나님은 남겨두신 민족들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순종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성취의 이야기 안에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취의 최대치 — 솔로몬의 통일 왕국
그렇다면 여호수아 1:4의 지경 — 유브라데에서 대해까지 — 은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그 약속의 경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갑니다.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열왕기상 4:21, 개역한글). 그리고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열왕기상 4:24, 개역한글)라고 기록됩니다. 여기서 ‘하수’는 유브라데강을 가리킵니다. 정복이 아니라 조공과 평화를 통한 통치였지만, 여호수아 1:4의 지경은 솔로몬의 시대에 실질적으로 그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풀다 — 히브리서가 말하는 참 안식
그렇다면 21장의 ‘하나도 남음이 없이’와 13장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사이의 긴장을 성경은 어떻게 최종적으로 풀어낼까요? 신약의 히브리서가 그 답을 줍니다.
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브리서 4:8-9,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여호수아가 준 안식이 거짓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21:45의 성취는 진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더 큰 안식을 가리키는 이정표였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하나님은 시편을 빌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히브리서 4:7, 개역한글)고 하시며 또 다른 날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땅의 경계는 채워졌지만, 안식에 대한 갈망은 그 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언약의 지평을 더 넓혀 이렇게 씁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로마서 4:13, 개역한글). 유브라데에서 대해까지였던 땅의 약속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결국 온 세상을 향한 약속으로 자라났습니다.
암송을 돕는 틀 — ‘종 · 경계 · 성취 · 안식’
- 종(모세) → 경계(1:4): ‘모세가 죽은 후에’로 시작해 ‘광야·레바논·유브라데·대해’ 네 방향을 손가락으로 짚듯 순서대로 외웁니다.
- 성취(21:45):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 짧고 강한 문장이니 통째로 외웁니다.
- 긴장(13:1):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 21장과 짝지어 외우면 성경의 정직함이 함께 기억됩니다.
- 안식(히 4:9):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네 구절의 여정이 결국 여기서 마무리됨을 기억합니다.
적용을 위한 묵상 질문
- 내 삶에서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고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증거는 무엇인가?
- 동시에 내 삶에는 여전히 ‘남은 것이 매우 많은’ 영역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실패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 솔로몬의 통일 왕국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최대치에 이르렀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는가?
- 히브리서가 가리키는 ‘남아 있는 안식’을 나는 지금 이 땅의 성취로 대신하려 하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