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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11, 물세례와 성령과 불세례 — 지상명령의 두 번째 순종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로 행하는 예식의 기억에 머무를까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이어질까요? 지상명령의 두 번째 항목으로 살펴볼 순종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번 글은 마태복음 3:11을 주요 해설 본문으로 삼아 물세례와 성령과 불로 베푸시는 세례를 살피고, 사도행전 19:1-7의 에베소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함께 읽습니다.

이 명령의 자리는 마태복음 28:18-20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베풀고, 자신이 명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셨습니다. 세례는 제자 삼는 사명 안에서 복음을 믿는 고백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잇습니다. 그 길에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물 아래에 몸을 잠근 세례 참가자와 집례자
2003년 괌 아프라 항의 침수세례. 오늘날 물세례를 설명하는 사진입니다. 사진: U.S. Navy photo by lieutenant commander Bob Meeker / Released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이 글의 성경 직접 인용은 개역한글을 사용합니다. 본문 해설과 적용은 직접 인용과 구별합니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개역한글

세례를 베푸는 공동체는 사람을 집례자나 단체의 이름에 붙들어 두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분명히 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향하도록 돕습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도 예식의 순서만 배우기보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누구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교육은 복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고, 죄를 회개하며 주님을 믿도록 권하고, 이후에도 말씀을 배우고 지키도록 곁에서 돕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날을 축하하는 일과 그다음 날부터 함께 걸어가는 일은 하나의 제자훈련에 속합니다.

갈릴리 호수와 호숫가 언덕
카할에서 바라본 오늘날의 갈릴리 호수. 지상명령을 전하신 갈릴리 지역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입니다. 사진: Alexey Goral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물로 세례를 준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3:11, 개역한글

마태복음 3:11에서 요한은 자신이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푼다고 말하면서, 뒤에 오시는 분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시다고 증언합니다.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가 대조됩니다.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을 자기 곁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실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을 기다리도록 이끄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는 기독교의 물세례를 곧바로 요한의 세례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물을 사용한다는 공통점만으로 두 세례의 내용을 같게 만들면 사도행전 19장의 전개를 놓치게 됩니다.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사역자는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며 기도할 수 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성령을 나누어 주거나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사모하는 우리의 믿음도 특별한 사람의 능력보다 약속하신 주님께 향해야 합니다.

방문객과 돌기둥이 보이는 에베소 유적
오늘날의 에베소 유적. 사도행전 19장이 전하는 도시를 살펴보는 사진이며 세례가 일어난 장소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사진: Slyronit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에베소의 제자들은 복음을 듣고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사도행전 19:1-7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이 성령을 받았는지 묻습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요한의 세례였습니다. 바울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으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설명합니다.

본문의 흐름을 차례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2. 바울은 요한이 가리킨 분이 예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3. 그들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4.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5. 그들은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사도행전 19:6, 개역한글

이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성령의 임하심이 그들에게 실제로 드러났으며 방언과 예언이 동반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단지 지식이나 추상적인 설명에 가두지 않도록 우리를 일깨웁니다.

동시에 사도행전 19:5의 세례를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요한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바울이 성령 체험만 더해 준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하는 흐름입니다. 사도행전의 예수 이름에 대한 강조는 그들이 누구를 믿게 되었는지 보여 줍니다. 이를 마태복음 28:19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지우는 근거로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세례에 순종하며 성령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에베소의 사건을 읽으며 물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세례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면서, 오늘도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을 형식에 가두지 말고 살아 계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44-48에서는 순서가 다릅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동안 성령께서 임하셨고, 방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나타났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물세례를 받도록 명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물세례를 불필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장면과 에베소의 사건을 함께 읽으면 물세례와 성령의 역사를 경쟁시키거나,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체험 순서만 강요하지 않게 됩니다.

방언과 예언도 성경이 증언하는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7-11은 은사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며 성령께서 뜻대로 나누어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2:29-30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은사를 가지는지를 되묻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에서 나타난 방언과 예언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특정한 체험 하나로 다른 사람의 구원이나 신앙 전체를 판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제자들 위에 불 같은 빛이 머무는 오순절 삽화
오순절의 불 같은 혀와 성령의 임재를 표현한 설명용 삽화. 인물과 건물은 상상하여 그렸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불처럼 임하신 성령은 우리를 주님께 온전히 돌이키십니다

마태복음 3:11의 성령과 불이라는 말씀을 사도행전 2:1-4의 오순절 사건과 함께 읽어 봅시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머물렀고, 그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는 실제 불길에 사람이 타는 장면이 아니라, 불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 임재와 성령의 충만을 기록합니다.

이 두 본문을 연결하여, 불세례를 우리를 주님께 온전히 돌이키게 하는 강력한 성령세례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성령과 불을 서로 떨어진 체험의 목록으로 나누기보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불처럼 임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은 마음의 일부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주님께 내어 드리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오순절의 이야기는 놀라운 현상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37-42에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와 세례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와 기도에 힘쓰는 공동체로 이어집니다. 고린도전서 6:11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하게 됨을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주님께 가까이 이끌며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합니다.

그러므로 불세례를 사모하는 기도는 잠시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며, 붙들고 있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성령께 우리를 맡기는 것입니다. 오래된 미움을 내려놓고, 숨겨 온 잘못을 인정하고, 미뤄 온 화해를 시작하는 일도 그런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말과 선택을 새롭게 하시기를 구합시다.

성경을 펴고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성경을 함께 읽는 현대의 모임. 세례 후에도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삶을 함께 돌봅니다. 사진: WELSTech Podcast · CC0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세례를 베푸는 명령을 오늘 어떻게 따를까요?

세례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교회 공동체와 함께 복음을 배우고 질문하십시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의 뜻을 이해하며 믿음으로 응답하십시오. 예식 준비와 함께 주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분이라면 세례의 날짜뿐 아니라 오늘의 순종을 돌아보십시오. 성령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고, 깨달은 말씀 한 가지를 실천해 보십시오. 은사를 사모하되 비교나 우월감보다 공동체를 섬기는 데 마음을 두십시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분이라면 바울처럼 상대가 무엇을 알고 믿는지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부족한 이해를 비웃지 말고 예수님을 더 분명하게 전하십시오. 함께 기도하고 세례를 준비하도록 돕고, 세례 후에도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삶을 돌보십시오.

지상명령의 두 번째 항목인 세례는 이렇게 제자를 세우는 사명과 이어집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베푸는 명령에 순종하고,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물세례로 믿음을 고백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께 온전히 돌이키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사모합시다. 세례와 성령의 역사를 귀히 여기며 함께하시는 주님의 약속 안에서 걸어갑시다.

펼친 성경에 놓인 펜과 책갈피
펼친 성경과 펜. 말씀 앞에서 마음과 삶을 주님께 드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진: Ryk Neethling from Melbourne, Australia · CC BY 2.0 · 출처 Wikimedia Commons · 라이선스

함께 드리는 기도

주 예수님,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례를 베풀도록 명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성령과 불로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마음과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게 하소서.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열매를 맺게 하시고, 받은 은사로 서로를 섬기게 하소서. 새로 믿는 이들을 끝까지 돌보며 주님이 명하신 것을 함께 지키게 하소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아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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