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8, 개역한글). 성경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렇게 짧게 말하는 문장은 드뭅니다. 같은 편지는 앞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 개역한글)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일서 4:7-12는 이 선언을 감상적인 구호로 두지 않습니다. 사랑의 근원이 어디인지, 그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여섯 절 안에 차례로 담아냅니다. 한 절씩 떼어 외우기보다 여섯 절을 통째로 외울 때 그 흐름이 살아나는 본문입니다.

오늘의 암송 구절 — 요한일서 4:7-12 (개역한글)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일서 4:7-12, 개역한글)
사랑의 근원, 증명, 방향, 거하심 — 네 가지 묵상 포인트
1. 사랑의 근원 — 요한일서 4:7-8
본문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한일서 4:7, 개역한글)는 권면으로 시작하지만, 그 근거를 사람의 의지에 두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 까닭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8). 요한은 몇 절 뒤에서 같은 고백을 한 번 더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일서 4:16, 개역한글). 사랑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한일서 4:7, 개역한글)라는 말씀처럼, 참된 사랑은 그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지가 됩니다.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요한일서 4:8은 말합니다. 사랑할 힘이 바닥났다면 더 애쓰기에 앞서 그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 사랑의 증명 — 요한일서 4:9-10
요한일서 4:9-10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 목적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 4:9, 개역한글)는 데 있었습니다. 이어서 사랑의 출발점을 못 박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요한일서 4:10, 개역한글). 같은 장은 이것을 한 줄로 다시 요약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한일서 4:19, 개역한글).
요한일서 4:10에서 화목제로 옮겨진 헬라어 낱말 ἱλασμός(힐라스모스)는 신약에서 요한일서 2:2와 요한일서 4:10, 두 곳에만 나옵니다. 요한은 앞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한일서 2:2, 개역한글). 아들은 우리 죄를 위하여 보내졌고, 그 일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도 같은 사실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개역한글).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십자가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3. 사랑의 방향 — 요한일서 4:11
받은 사랑은 흘러가야 합니다. 요한일서 4:11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이같이”(요한일서 4:11, 개역한글)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말은 바로 앞 요한일서 4:9-10이 말한 사랑, 곧 아들을 보내신 사랑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3장에서도 같은 논리로 썼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한일서 3:16, 개역한글). 그 사랑은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일서 3:18, 개역한글).
이것은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과 그대로 겹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 개역한글). 예수님은 이 계명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저녁 자리에서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3:4-5).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는 세상이 예수님의 제자를 알아보는 표지입니다.

4. 하나님이 거하심 — 요한일서 4:12
요한일서 4:12는 뜻밖의 진술로 시작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한일서 4:12, 개역한글). 그런데 이 문장의 결론은 절망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도 거의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 1:18, 개역한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버지 품속에 계신 분이 나타내셨듯이, 요한일서 4:12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그들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분의 사랑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안에서 드러납니다.
요한일서 4:20은 같은 진리를 거꾸로 확인합니다.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서로 사랑은 따뜻한 분위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실제로 그 안에 계심을 증언하는 증거가 됩니다.
구절의 배경 — 거짓 가르침 앞에서 서로 사랑하자고 한 편지

요한일서(요한1서)는 본문에 저자의 이름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저자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한일서 1:1, 개역한글)고 말하는 증인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편지를 사도 요한의 글로 받아 왔습니다. 편지를 받은 교회는 거짓 가르침으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4:1-3은 영들을 분별하라고 경고하며 그 기준을 이렇게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한일서 4:2, 개역한글). 그리고 요한은 곧바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요한일서 4:7, 개역한글)로 넘어갑니다.
요한은 편지 전체에서 바른 고백과 서로 사랑을 하나로 붙듭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한일서 3:23, 개역한글). 믿음과 사랑은 한 계명 안에 묶여 있으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한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왜 이 구절을 외워야 할까
첫째,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경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사랑을 감정이나 끌림으로 정의하지만, 이 본문은 사랑을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일로 정의합니다. 외워 둔 정의는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기준이 됩니다.
둘째, 관계가 힘들어질 때 붙들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앞에서 요한일서 4:11은 내 감정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서 사랑할 힘을 길어 올리게 합니다.
셋째, 지상명령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20, 개역한글)고 하셨습니다. 그 분부 가운데 하나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이며(요한복음 13:34), 제자들이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게 됩니다(요한복음 13:3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서로 사랑(요한일서 4:12)은 제자를 세우는 일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외우는 법 — 근원 · 증명 · 방향 · 거하심
- 요한일서 4:7-8 — 근원: 서로 사랑하자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함 → 하나님은 사랑이심의 흐름으로 외웁니다. 긍정문인 사랑하는 자마다(요한일서 4:7)와 부정문인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요한일서 4:8)이 짝을 이룹니다.
- 요한일서 4:9-10 — 증명: 나타난바 되었으니와 사랑은 여기 있으니, 두 머리말을 축으로 독생자 · 살리려 · 화목제 세 낱말을 붙입니다.
- 요한일서 4:11 — 방향: 이같이 사랑하셨은즉 → 마땅하도다, 한 문장으로 외웁니다.
- 요한일서 4:12 — 거하심: 본 사람이 없으되 / 서로 사랑하면 / 거하시고 / 온전히 이루느니라, 네 마디로 닫습니다.
적용을 위한 묵상 질문
- 나는 사랑을 어디에서 길어 올리고 있는가? 내 감정과 의지인가,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인가?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요한일서 4:10, 개역한글) — 내 신앙은 내가 드린 것 위에 서 있는가, 받은 사랑 위에 서 있는가?
- 지금 내가 사랑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 앞에서 요한일서 4:11을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까?
- 우리 공동체의 서로 사랑은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는가, 가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