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 성경강해는 창세기 1장에서 출발해 성경을 한 장씩 차례로 읽어 갑니다. 성경의 첫 장은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느냐는 질문보다 더 깊은 물음, 곧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물음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창세기 1장은 그 물음에 여러 겹으로 대답합니다. 말씀으로 지으시는 하나님, 질서를 세우고 채우시는 하나님, 사람에게 자기 형상을 주신 하나님, 먹이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안식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글은 그 대답을 본문의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이 강해의 원칙은 하나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견해나 시대의 논쟁에 끌려가지 않고, 창세기 1장이 말하는 바를 다른 성경 본문이 어떻게 풀어 주는지 따라갑니다. 본문에서 직접 인용하는 성경 말씀은 모두 공개 저작물인 개역한글(1961)이며, 인용한 곳마다 장과 절을 함께 적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 만물의 시작 (창 1:1-2)
창세기는 증명이 아니라 선포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개역한글)
이 한 문장이 성경 전체의 표제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의 시작인 태초에 하늘과 땅, 곧 온 세계를 있게 하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며,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은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섬기던 고대의 종교를 처음부터 정면으로 부인합니다. 해와 달조차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셔서 하늘에 두신 광명일 뿐입니다(창 1:14-18).
이어지는 창세기 1:2은 아직 빚어지기 전의 상태를 보여 줍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개역한글)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말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 두 가지 결핍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1장의 엿새는 바로 이 두 결핍을 차례로 채워 갑니다. 흑암과 깊은 물만 있던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창조의 일은 하나님이 부재하신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함께 계신 곳에서 시작됩니다.
엿새의 질서: 형성과 채움, 그리고 안식
창세기 1장을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 보면, 무질서한 나열이 아니라 정교한 짜임새가 드러납니다. 창세기 1:2이 말한 형태 없음과 비어 있음, 이 두 문제에 하나님은 두 묶음으로 응답하십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영역을 형성하시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영역을 채우십니다.
| 형성하신 날 | 채우신 날 |
|---|---|
| 첫째 날: 빛, 낮과 밤 (창 1:3-5) | 넷째 날: 해와 달과 별 (창 1:14-19) |
| 둘째 날: 궁창(하늘),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심 (창 1:6-8) |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 (창 1:20-23) |
| 셋째 날: 뭍과 바다, 식물 (창 1:9-13) |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 (창 1:24-31) |
| 일곱째 날: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심 (창 2:1-3) | |

표를 가로로 읽으면 짝이 보입니다. 첫째 날의 빛은 넷째 날의 광명체로, 둘째 날 궁창으로 나뉜 하늘과 물은 다섯째 날의 새와 물고기로, 셋째 날의 뭍과 식물은 여섯째 날의 짐승과 사람으로 채워집니다. 셋째 날에 돋아난 식물은 여섯째 날에 지은 생물의 양식이 됩니다(창 1:29-30).
본문에는 비슷한 가락이 되풀이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명령), 그대로 되며(성취),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십니다(평가). 다만 둘째 날에는 좋았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녁과 아침으로 하루를 매듭짓는 후렴은 엿새 모두에 울리고(창 1:5, 8, 13, 19, 23, 31), 일곱째 날에 이르러 안식으로 잦아듭니다. 창조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그리고 일에서 안식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 말씀으로 지으신 창조 (창 1:3)
창세기 1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은 하나님이 가라사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 지으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3, 개역한글)
명령과 성취 사이에 아무런 틈이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창조의 방식을 노래로 풀어 줍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6, 시 33:9,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히 11:3). 하나님은 이미 있던 재료를 다듬는 장인이 아니라, 없던 것을 말씀으로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누구입니까? 신약은 창세기 1장의 첫 어구를 그대로 받아 답을 줍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1, 요 1:3, 개역한글)
요한복음 1:1의 태초에는 창세기 1:1의 태초에를 되울립니다. 창세기에서 천지를 지으신 그 말씀이 영원하신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성경 스스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고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서 있다고 증언하고(골 1:16-17), 하나님이 아들로 모든 세계를 지으시고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가르칩니다(히 1:2-3). 창세기 1장의 창조주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 창조의 빛에서 복음의 빛으로 (창 1:3-5)

하나님이 가장 먼저 부르신 것은 빛이었습니다. 그분은 빛을 보시고 좋다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낮과 밤이라 칭하셨습니다(창 1:4-5). 성경은 이 첫 빛을 물리적 현상으로만 두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기의 빛 명령을 복음의 빛에 곧장 잇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 개역한글)
창조의 첫째 날 흑암 속에 빛을 부르신 하나님이, 죄로 어두워진 마음에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비추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와 구원은 같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요한도 같은 빛을 증언합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으며,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5, 개역한글)고 말합니다.
넷째 날에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고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1:14-18). 빛이 먼저 있었고, 해와 달은 넷째 날에야 하늘에 놓였습니다. 우리가 달력과 계절을 따라 사는 날마다의 시간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 있습니다.

그 종류대로 채우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 (창 1:20-25)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 하나님은 비어 있던 바다와 하늘과 땅을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큰 물고기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 날개 있는 모든 새,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이 차례로 등장합니다(창 1:20-25). 이 단락에서 거듭 들리는 말은 그 종류대로입니다. 생명은 뒤섞인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안에서 각기 고유한 모습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처음으로 복이라는 말이 이 생물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 1:22, 개역한글)
하나님은 생명을 지으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그 생명이 번성하여 땅을 채우기를 기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이 풍성함 앞에서 감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 104:24, 개역한글)
창조 세계의 다양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부요를 드러내는 진열장입니다. 들판의 짐승과 하늘의 새를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을 지으신 분의 지혜를 함께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 (창 1:26-28)
엿새의 창조는 한 절정을 향해 올라갑니다. 다른 생물은 그 종류대로 지으셨지만,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은 먼저 스스로 의논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6-27, 개역한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선언은 성경 전체에서 인간 존엄의 뿌리가 됩니다.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은 살인을 금하시는 근거를 여기에 두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 9:6, 개역한글). 사람을 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침해하는 일이기에, 모든 사람의 생명은 귀합니다. 야고보는 같은 이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는 모순을 책망합니다(약 3:9).
형상에는 사명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생물을 다스리라 명하십니다(창 1:28). 다섯째 날 생물에게 주신 복이 이제 사람에게 사명과 함께 주어집니다. 시편 기자는 이 다스림을, 사람을 영화와 존귀로 관 씌우시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신 일로 노래합니다(시 8:5-6). 이 통치는 착취가 아니라 맡겨진 청지기직입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지만 땅은 인생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시 115:16).
이 형상은 죄로 일그러졌지만, 신약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좇아 새롭게 되는 새 사람을 입으며(골 3:10; 엡 4:24), 하나님은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롬 8:29). 바울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골 1:15, 개역한글)라고 말합니다. 형상의 원형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 구원의 목표입니다. 예수께서도 친히 창세기 1:27을 인용하시며, 사람을 본래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창조 질서 위에 결혼을 세우셨습니다(마 19:4-6).

너희 식물이 되리라 — 먹이시는 하나님 (창 1:29-30)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은 곧바로 그 사명을 감당할 양식을 내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9, 개역한글)
사람이 첫 숨을 쉬기도 전에, 셋째 날의 채소와 나무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에게도 푸른 풀을 식물로 주셨습니다(창 1:30). 창조주는 지으신 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먹이시는 분입니다. 시편은 이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시 145:15-16, 개역한글)
예수께서도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시며,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새를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면 그보다 귀한 너희를 더욱 돌보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6). 창세기 1:29-30은 염려 많은 우리에게, 세상의 첫 식탁을 차리신 분이 오늘 우리의 식탁도 아신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심히 좋았더라 — 창조의 선하심 (창 1:31)
엿새를 마치신 하나님의 평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개역한글)
거듭 좋았더라 하시던 평가가, 사람까지 지으신 여섯째 날에 이르러 심히 좋았더라로 높아집니다. 물질과 몸과 세상은 본래 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가르칩니다(딤전 4:4). 세상을 등지는 것이 경건이 아니라, 선하게 지으신 창조를 감사로 누리며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일곱째 날, 안식하시니라 (창 2:1-3)

창조 이야기는 일이 아니라 안식에서 완성됩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 2:1, 창 2:3, 개역한글)
여섯 날을 매듭짓던 저녁과 아침의 후렴이 일곱째 날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안식은 끝나지 않는 안식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 창조의 안식은 훗날 시내산에서 안식일 계명의 근거가 됩니다. 여호와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으므로 안식일을 복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출 20:11; 31:17).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셨고(막 2:27), 히브리서는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히 4:9-10). 창세기의 일곱째 날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갈 안식의 첫 그림자입니다.
첫 창조에서 새 창조로
창세기 1장은 성경 이야기의 첫 장일 뿐 아니라, 성경의 마지막 장면을 미리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처음 창조를 말씀으로 이루신 하나님은 죄로 망가진 사람과 세상을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새 창조라고 부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개역한글)
요한계시록은 이 새 창조의 완성을 보여 줍니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고(계 21:1), 보좌에 앉으신 이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개역한글)고 선언하십니다. 첫째 날 흑암 속에 빛을 부르신 하나님은 마지막에 해도 등불도 쓸데없게 하시고 친히 그 백성을 비추십니다(계 22:5). 창세기 1장의 빛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 빛으로 이어집니다.
창조주를 아는 것이 제자도의 출발점
창세기 1장은 세상의 기원에 관한 정보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배로의 부름입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을 조성하신 분이며 그 외에 다른 이가 없습니다(사 45:18).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 19:1), 그 만드신 만물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아무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롬 1:20). 그래서 하늘의 예배는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11, 개역한글)
창조주를 아는 것은 제자도의 첫걸음입니다.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그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개역한글)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명하셨습니다(마 28:19-20). 만물을 지으신 분께 모든 권세가 있음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앞에서 우리의 첫 응답은 논쟁이 아니라 경배입니다. 이 경배에서 순종과 증거와 선교가 흘러나옵니다.
이번 주에 창세기 1장을 다시 읽으며 다음을 묵상해 보십시오.
- 하나님이 말씀으로 혼돈에 질서를 세우셨듯이, 지금 내 삶의 어지러운 영역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 오늘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대하는 말과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해 봅니다.
- 내일의 양식을 염려하는 마음을, 첫 식탁을 차리신 하나님께 감사로 맡겨 드립니다.
- 일곱째 날의 안식을 기억하며,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이번 주 일정 안에 정해 둡니다.
다음 강해에서는 창세기 2장으로 이어,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에 두신 이야기를 함께 살핍니다.
참고 자료
- 창세기 1장 개역한글 본문 — YouVersion(bible.com)
- 개역한글판 창세기 — 위키문헌(공개 저작물 본문)
- 창세기 1:1 상호참조 — BibleHub
- 창세기 1:26 상호참조 — BibleHub
- 창세기 1:29 상호참조 — BibleHub
- 창세기 1장 원어·상호참조 — Blue Letter Bible
- Genesis 1 (World English Bible) — Bible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