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성탄 전날 오전 11시, 서울 정동교회 예배당에는 난롯불 하나 없었습니다. 장식도 없는 넓은 예배당에 스무 명 남짓의 교인만 모였고, 목사가 없어 평신도 한 사람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가 마태복음 10:29을 읽자 사람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프란체스카 도너 리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이 예배는 지금껏 우리가 참석해온 예배 중 가장 감명 깊게 기억에 새겨질 만큼 감동적이었다.”
마태복음 10:29과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29-31, 개역한글
《6.25와 이승만,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는 이런 장면들이 날짜별로 쌓인 책입니다. 이 서평은 책을 정치적 평가의 자료로 쓰기보다, 환난의 한복판을 통과한 한 그리스도인의 기록으로 읽어 보려 합니다.

어떤 책인가
이 책의 원본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Francesca Donner Rhee, 1900~1992)가 한국전쟁 중에 영어로 쓴 일기입니다. 비망록(Confidential Notes) 또는 프란체스카 일기(Mrs Rhee Diary)로 불렸고, 전쟁이 시작된 첫날부터 유엔군이 37도선까지 물러났다가 다시 반격을 시작하는 이듬해 겨울까지, 약 여덟 달을 다룹니다.
일기는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프란체스카는 1983년 여름부터 이 비망록을 바탕으로 중앙일보에 〈6.25와 이승만 대통령〉을 113회 연재했고, 2010년 전쟁 60주년에 그 글을 다시 정리하고 보완해 기파랑에서 책으로 펴냈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이는 며느리 조혜자입니다. 그러니 독자가 읽는 문장은 영어 일기를 바탕으로 한 회고 연재를 우리말로 옮기고 다듬은 글입니다.

기록한 사람,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 도너는 1900년 오스트리아 빈 교외 인처스도르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며 영어 통역사와 타자·속기사 자격을 얻었고, 1933년 제네바에서 이승만을 만나 1934년 뉴욕에서 결혼했습니다. 1946년 한국에 온 뒤에는 남편의 비서처럼 편지와 문서를 타자로 쳤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그 타자기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1950년 가을의 한 일기에는 전날 저녁부터 계속 타자를 쳐서 손끝이 화끈거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며칠 앞선 일기에는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기가 어렵다고 적으면서, 대통령이 한 줄이라도 좋으니 날마다 간단히 기록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힙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하루하루의 짧은 기록이 쌓였기 때문입니다.

일기에 남은 네 장면
평범한 아침이 무너지다. 전쟁이 시작된 날 아침, 프란체스카는 어금니 치료를 받으러 치과에 갔고 대통령은 경회루로 낚시를 나갔습니다. 오전 10시쯤 국방장관이 급히 경무대로 들어오면서 하루가 뒤집혔습니다. 일기는 거대한 사건이 늘 평범한 하루 한가운데로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땀띠약 상자. 한여름 대구의 임시 관저에는 70여 명이 함께 지냈습니다. 물이 모자라 두 사람 모두 온몸에 땀띠가 번졌고, 프란체스카는 미군 장군에게 부탁해 약 상자를 겨우 얻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상자를 보자마자 일선의 군인들, 곧 부부가 늘 우리 아이들이라 부르던 병사들에게 보내라며 통째로 내주었습니다. 친정에서 보내온 비타민까지 함께였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연고 하나라도 남기려다 들켜 무안했던 일까지 숨기지 않고 적었습니다.

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40도 가까운 고열과 위염으로 앓던 날, 그녀는 자신에게는 돌봐 주는 사람과 끼니가 있다고 적은 뒤 집과 가족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나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아픔을 이웃의 아픔 옆에 두고 다시 재어 보는 문장입니다.
감사로 시작하는 하루.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온 날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평양을 무사히 다녀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동행하지 못한 그녀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이 대목에서 신앙은 긴 고백이 아니라 짧은 감사와 기다림 속에 드러납니다.

성탄 전날 읽힌 마태복음 10장
다시 성탄 전날의 예배당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날 읽힌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리 가운데 양을 보냄과 같다고 하셨고(마태복음 10:16), 그분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10:22). 마태복음 10:29-31의 위로는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로 보냄받는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참새 한 마리의 떨어짐도 아버지의 허락 밖에 있지 않다면, 그분이 보내신 사람들은 더더욱 그분의 돌보심 아래 있습니다.
그날 대통령은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 어떤 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교인들을 격려했다고 일기는 전합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나올 법한 격려입니다. 다만 본문 자체가 약속하는 것은 전쟁의 승패보다 더 깊은 것, 곧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1, 개역한글

그녀가 성경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는 마지막 당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1992년 세상을 떠나며 그녀는 며느리에게 세 가지를 부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성경책을 무덤에 꼭 넣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결식은 일기 속 성탄 예배가 드려졌던 정동제일감리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비판적으로 읽기
이 책을 정직하게 읽으려면 몇 가지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이것은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쓴 개인 기록입니다.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같은 시기를 다른 자리에서 겪은 사람들의 고통과 평가는 이 책에 다 담기지 않습니다. 둘째, 지금의 책은 30여 년 뒤의 신문 연재와 번역, 보완을 거친 글입니다. 날짜별 형식이지만 그날 쓴 문장 그대로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프란체스카 자신에 대한 동시대인의 기억도 엇갈립니다. 인색하고 냉정했다는 회고가 있는가 하면, 매우 알뜰한 사람이었다는 회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의 판결문이 아니라 한 증인의 육성으로 읽는 것이 알맞습니다. 그렇게 읽을 때 오히려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더 사람답게 보입니다. 그녀는 흔들렸고, 연고 하나를 아까워했고, 남의 잘못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자기 성미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차가운 예배당에서 마태복음 10장을 들으며 울었습니다.

이 책을 권하는 독자
한국 근현대사를 한 사람의 하루 단위로 들여다보고 싶은 분, 전쟁과 피란의 시간을 겪은 부모 세대의 신앙을 이해하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지금 각자의 환난을 지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한 가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며 하신 약속을 나는 어디에서 붙들고 있는가. 거창한 고백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한 줄의 기록, 한 번의 감사, 내 몫을 이웃에게 내어 주는 작은 선택에서 그 약속을 사는 제자의 삶은 시작됩니다.
참고 자료
- 알라딘 — 《6.25와 이승만,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원판) 서지 정보
- 알라딘 —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보급판) 서지 정보
- 뉴데일리(2010) — 출간 경위와 일기 주요 대목 발췌
- 월간조선(2019) —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서평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프란체스카 도너
- 위키백과 — 프란체스카 도너(유언·영결식·동시대인의 평가)
- bible.com — 마태복음 10장(개역한글)
- bible.com — 시편 46편(개역한글)
- BibleHub — 마태복음 10:29 영어 역본 대조(WEB)
- BibleHub — 시편 46:1 영어 역본 대조(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