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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 보내심 받은 자의 지상명령

부활하신 예수께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처음 건네신 말씀은 책망이 아니라 “평강”이었고, 곧이어 맡기신 것은 하나의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지상명령을 마태복음 28장으로만 기억하지만, 요한복음 20:21은 같은 사명을 전혀 다른 각도, 곧 보내심(파송)이라는 각도에서 비춥니다. 이 글은 요한복음 20:21이 밝히는 ‘보내심 받은 자의 지상명령’을 성경 본문과 그 성경 안의 상호참조를 따라 차근히 살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손을 들어 사명을 주시는 유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사명을 주시는 장면 (시몬 체호비치, 18세기) 그림: Szymon Czechowicz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 이 글의 성경 인용은 모두 개역한글판(1961, 공개도메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식탁에 둘러앉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손을 내미시는 중세 성화
부활하신 주님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심 (두초 디 부오닌세냐, 마에스타, 14세기) 그림: Duccio di Buoninsegna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부활하신 주님의 첫 명령: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본문의 정황부터 봅니다. 부활 당일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모여 있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 개역한글)

부활하신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며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바로 그분임을 확인시키셨고(20절), 이어서 같은 평강의 인사를 반복하시며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21, 개역한글)

주목할 것은 순서입니다. 파송에 앞서 평강이 먼저 선포됩니다.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제자가 환난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자기 용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먼저 주신 평강입니다. 같은 다락방 강화에서 주님은 이미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라고 하셨습니다. 보내심은 언제나 그 평강 위에 세워집니다.

하늘의 빛이 중심 인물을 지나 여러 사람에게로 퍼져 나가는 상징적 삽화
하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 제자들에게로 이어지는 보내심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보내심의 사슬: 아버지께서 아들을, 아들이 우리를

요한복음 20:21의 무게 중심은 “~같이”라는 한 단어에 있습니다. 우리의 파송은 새로 고안된 사명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그 보내심에 접붙여진 사명입니다. 이 해석의 근거는 신학 이론이 아니라 요한복음 본문 자체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드리신 대제사장 기도에서 이미 이 파송을 예고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한복음 17:18, 개역한글)

17장의 “보내었고”가 20장에서 “보내노라”로 성취됩니다. 여기서 파송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뜻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이루려 오셨고(요한복음 6:38), 그 보내심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이었습니다(요한복음 3:17). 그렇다면 그 아들의 파송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의 파송 또한, 자기 사업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세상의 구원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보내심의 사슬 —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아들에게서 우리에게로 — 은 목적까지 함께 이어집니다.

천사가 곁에 있고 두루마리를 든 선지자 이사야를 그린 프레스코
선지자 이사야 — '나를 보내사'(이사야 61:1)의 구약적 뿌리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 그림: Giovanni Battista Tiepolo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구약에 뿌리내린 보내심

이 보내심은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기름부음 받은 종의 사명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61:1, 개역한글)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이 본문을 펴서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누가복음 4:21)라고 선언하셨습니다(누가복음 4:18 참조). 곧 이사야가 예언한 “나를 보내사”의 그 보내심이 예수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21의 “보내심”은 이 메시아적 파송의 연장선에 있으며, 우리는 그 오랜 구속 이야기의 가장 최근 장(章)으로 부름받습니다.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빛과 함께 모인 제자들에게 내려오는 제단화
성령 강림 — 보내심에 함께하는 성령의 능력 (티치아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사진: Didier Descouens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보내심에는 성령의 능력이 함께 옵니다

파송과 능력 부여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20:21의 파송 바로 다음 절을 “이 말씀을 하시고”로 직접 이어 붙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22, 개역한글)

“숨을 내쉬며”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창세기 2:7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내심은 곧 새 창조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이 패턴은 다른 지상명령 본문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누가복음 24:49)라고 하셨고, 승천 직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라고 하셨습니다. 파송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근원이신 성령께 자신을 여는 일입니다.

산을 향해 굽이쳐 이어지는 시골 흙길 흑백 사진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로마서 10:15) — 보내심 받은 자의 길 사진: Robin Férand · CC BY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보내심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그러면 보내심 받은 자는 세상에서 어떤 존재입니까. 성경은 두 가지 이미지로 답합니다. 첫째, 우리는 전파하는 자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15, 개역한글)

바울은 전파의 전제로 “보내심”을 못 박습니다. 보내심이 없으면 전파도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대사)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20, 개역한글)

사신은 자기 뜻을 전하지 않고 보낸 왕의 뜻을 전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 본문이 그려 준 그림 위에 하나의 신학적 언어를 조심스럽게 덧붙일 수 있습니다. 선교학은 이를 ‘미시오 데이(Missio Dei)’, 곧 ‘하나님의 보내심’이라고 부릅니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의 열심이 아니라 보내시는 하나님이시며, 교회는 그 보내심에 참여하도록 파송된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의 뿌리와 검증은 언제나 성경 본문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시고(요한복음 3:17), 아버지와 아들이 성령을 보내시며(요한복음 14:26), 그 아들이 제자를 보내신다(요한복음 20:21)는 성경의 증언이 미시오 데이의 참된 근거입니다.

새벽빛이 비치는 문을 나서 일상의 거리로 향하는 사람의 상징적 삽화
가정과 일터와 이웃, 일상의 자리로 보내심 받은 그리스도인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오늘, 당신은 어디로 보내심을 받았습니까

요한복음 20:21의 “너희”는 특정한 직분자만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 공동체 전체였습니다. 따라서 이 파송은 선교사와 목회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자리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 가정으로 보내심. 가장 가깝고 가장 어려운 선교지입니다.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첫 자리입니다.
  • 일터로 보내심. 신실함과 정직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딛는 현장입니다.
  • 이웃과 관계로 보내심. 한 사람의 이름을 놓고 기도하며, 자연스러운 대화의 문이 열릴 때 담대히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일입니다.

파송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이 발을 딛는 바로 그곳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 같이 당신을 보내신 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나를 향해 안으로만 향하던 삶이, 부활하신 주님의 평강 위에서 세상을 향해 밖으로 돌아서는 것 — 그것이 보내심 받은 자의 지상명령입니다.

기도로 나아가기

주님, 부활의 평강을 먼저 주시고 저를 보내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그 사랑과 목적으로, 오늘 제가 선 자리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되게 하소서. 제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담대히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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