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지나 하늘로 오르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웅장한 신학 강의도, 교회 조직의 청사진도 아니었습니다. 단 한 문장,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짧지만, 이 한 절 안에 성령의 권능과 증인의 부르심,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이르는 복음의 여정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초대 교회를 움직인 나침반이었고, 오늘 우리에게도 지상명령을 살아 내는 길을 가리킵니다.


승천 직전,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먼저 본문을 그대로 들어 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개역한글)
이 말씀은 진공 속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 절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행 1:6, 개역한글).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난 정치적 이스라엘의 회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의 방향 자체를 돌려놓으십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 개역한글)라고 하신 뒤, 곧바로 8절의 사명을 주십니다.
즉 예수님은 “언제 왕국이 오느냐”는 물음을 “너희가 어떻게 증인이 될 것이냐”는 부르심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마치신 직후 본문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행 1:9, 개역한글)라고 이어집니다. 승천 직전에 주신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명령이기에, 사도행전 1장 8절은 사도행전 28장 전체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알려 주는 책 전체의 주제 선언이 됩니다.

“권능”: 증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산다
본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순서입니다. 증인 됨보다 성령의 임하심이 먼저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조건절이 사명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서 “권능”으로 옮겨진 헬라어는 뒤나미스(δύναμις)로, 영어 단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이 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정치적 힘이나 군사적 위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점은 성경 스스로가 밝혀 줍니다. 누가는 이미 자신의 복음서 마지막에서 같은 약속을 기록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9, 개역한글).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라는 말과 사도행전 1장 8절의 “권능을 받고”는 같은 약속의 두 표현입니다.
그 약속의 성취는 바로 다음 장에서 나타납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행 2:1, 개역한글),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개역한글). 곧 사도행전 1장 8절의 약속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증인의 삶은 내 결심이나 재능이 아니라, 임하시는 성령의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증인”: 목격자에서 순교자까지
다음 단어는 “증인”입니다. 헬라어 마르튀스(μάρτυς)는 본래 법정에서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진술하는 목격자를 가리킵니다. 증인은 자기 의견을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훗날 이 단어가 영어 순교자(martyr)의 어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진실을 증언하는 일이 때로 목숨까지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증인”이라는 부르심 역시 성경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를 통해 자기 백성을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사 43:10, 개역한글)라고 부르셨고,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사 43:12, 개역한글)라고 거듭 확인하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열방 가운데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도록 부름받았듯이,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새로운 증인으로 세워집니다. 증인 사명은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땅 끝까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동심원
본문은 증인의 활동 무대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로 그립니다. 이는 단순한 지명 나열이 아니라, 중심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동심원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순서는 그대로 사도행전의 목차가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행 1~7장)은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흩어지며 유대와 사마리아로 넓어지고(행 8~12장), 마침내 바울의 선교를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당대 세계의 중심이자 ‘땅 끝’을 상징하는 로마에까지 이릅니다(행 13~28장).
특히 “사마리아”가 명시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던 땅이었습니다. 복음이 사마리아를 넘는다는 것은 지리적 경계뿐 아니라 민족과 편견의 경계까지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고(행 8장),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한 사건(행 10장)은 그 벽이 무너지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이 “땅 끝까지”라는 표현도 예수님의 즉흥적인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개역한글). 실제로 사도 바울은 이 이사야의 말씀을 자신의 이방 선교의 근거로 직접 인용합니다(행 13:47 참조). 사도행전 1장 8절의 “땅 끝까지”는, 이방의 빛이 되어 온 땅에 구원을 이르게 하시겠다는 오래된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지는 통로였던 것입니다.

한 지상명령, 여러 증언으로 울리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성경 전체의 지상명령 본문과 나란히 놓고 보면, 그 뜻이 더 선명해집니다. 마태복음은 사명의 본체를 이렇게 전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상 개역한글). 지상명령의 핵심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그 내용을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눅 24:47)이라 밝히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8, 이상 개역한글)라고 선언합니다. 요한복음은 그 파송의 근원을 짚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개역한글). 곧 마태의 “제자 삼으라”, 누가의 “증인이 되라”, 요한의 “보냄을 받았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땅 끝까지”는 서로 다른 명령이 아니라 하나의 지상명령이 여러 목소리로 울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경으로 서로를 설명합니다.

오늘의 적용: 나의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첫째, 증인의 삶은 성령을 의지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도가 두렵고 무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흔히 내 능력으로 감당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유창한 말솜씨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성령 앞에 나를 내어 드리는 가용성입니다. 기도로 성령을 구하는 사람이 결국 증인이 됩니다.
둘째, “예루살렘”과 “땅 끝”은 순서가 아니라 동시입니다. 본문의 지명은 “그리고”로 이어져 있습니다. 내 지역을 다 전도한 다음에야 세계 선교로 넘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선 자리 — 가정과 일터와 이웃이라는 “나의 예루살렘”에서 증인 되는 동시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땅 끝”을 기도와 헌신으로 품으라는 부르심입니다.
셋째, 증인은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모든 신자입니다. 사도행전의 권능은 사도들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인 교회 전체에 임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참조)으로 부릅니다. 목회자와 선교사만이 아니라, 예수를 만난 모든 사람이 자기가 받은 은혜를 증언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 이상 개역한글). 누군가는 가야 하고, 누군가는 보내야 합니다. 그 부르심 앞에 우리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기도와 헌신의 초청
사도행전 1장 8절은 우리를 조바심이 아니라 소망으로 초대합니다. 복음은 반드시 땅 끝까지 이릅니다. 그 확장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이루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 영광스러운 일에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시고, 기꺼이 참여할 특권을 주셨습니다.
오늘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 “성령님, 제게 권능을 주셔서 제가 선 자리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소서. 나의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땅 끝을 품게 하소서.” 이 짧은 기도가 지상명령을 살아 내는 첫걸음이 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개역한글) 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참고 자료
- 개역한글판 사도행전 — 위키문헌(공개도메인 성경 본문)
- 대한성서공회 — 성경 본문 및 번역본 안내(개역개정·새번역 확인)
- Crossway, “What Does Acts 1:8 Mean?”
- Ligonier Ministries(R.C. Sproul), “Jerusalem, Judea, Samaria, and the Uttermost Parts of the Earth”
- Precept Austin, Acts 1:8 Commentary
- Bible Hub, 헬라어 사전 δύναμις(dynamis, G1411)
- Bible Hub, 헬라어 사전 μάρτυς(martys, G3144)
- OpenBible, 사도행전 1:8 상호참조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