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에 앉으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태복음 24:3, 개역한글). 전쟁과 기근과 지진, 배교와 미움과 거짓 선지자 — 예수님의 대답은 어두운 목록으로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록 한가운데, 뜻밖의 문장이 놓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14, 개역한글). 세상의 끝은 재난이 불러오는 결말이 아니라, 복음이 완성되어야 오는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의 한 산에서 다시 주어지는 한 마디 명령 — 지상명령 — 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감람산에서 던진 질문
마태복음 24장은 제자들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2, 개역한글)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감람산에 올라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태복음 24:3, 개역한글)라고 여쭙니다. 이어지는 대답은 두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24:4-8은 거짓 그리스도, 전쟁과 전쟁 소문, 기근과 지진을 “재난의 시작”(마태복음 24:8, 개역한글)이라 부릅니다. 이어 24:9-13은 그보다 짙어진 환난 — 죽음에 넘겨짐, 모든 민족의 미움, 배교, 거짓 선지자, 사랑이 식어짐 — 을 말하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24:13, 개역한글)로 맺습니다. 재난의 목록은 점점 무거워지지만, 예수님은 그 무게가 곧 끝을 부른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끝을 부르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제야 끝이 오리라” — 조건이 된 약속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14, 개역한글). 이 한 절은 앞선 환난 목록의 결론이자 전환점입니다. 세상의 끝은 전쟁이나 기근, 배교의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제야” —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 옵니다. 재난은 끝의 원인이 아니라 끝이 오기까지의 배경이며, 복음의 완성된 전파야말로 역사가 향해 가는 실제 목적지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두려운 예언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으로 읽힙니다. 복음이 반드시 모든 민족에게 이를 것이라는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끝이 온다는 순서의 약속입니다.

성경으로 성경을 풀다 — 구약이 이미 그린 그림
이 약속은 마태복음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이미 이렇게 보았습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 7:13-14, 개역한글).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가 인자를 섬기게 된다는 이 옛 환상은, 마태복음 24:14의 “모든 민족”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자리를 미리 보여주는 본문으로 읽힙니다. 이사야도 같은 그림을 보았습니다. “때가 이르면 열방과 열족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이사야 66:18-19, 개역한글). 하나님이 친히 사람을 먼 이방 나라들로 “보내어” 당신의 영광을 전파하게 하시는 이 구조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훨씬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계시록이 보여주는 완성된 장면
이 약속이 이루어진 모습은 요한계시록에서 미리 보여집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요한계시록 7:9-10, 개역한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 다니엘이 본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와 정확히 같은 계열의 표현이 여기서 완성된 결실로 나타납니다. 또한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요한계시록 14:6, 개역한글)는 천사의 모습은, 복음의 세계적 전파가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주권적으로 보증하시는 일임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다니엘의 예고, 마태복음의 약속, 요한계시록의 완성 — 성경은 이렇게 성경으로 스스로를 풀어냅니다.

예언에서 명령으로 — 지상명령이 잇는 다리
그런데 이 약속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태복음은 24장에서 28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감람산 강화의 질문과 같은 표현(“세상 끝”)을 다시 사용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8-20, 개역한글). 24:14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라”는 약속이라면, 28:18-20은 그 약속을 이루어 갈 구체적인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이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사도 바울이 설명합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4-15, 17, 개역한글). “전파되리니”는 저절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의 실제 발걸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예언과 명령 사이, 그 “어떻게”의 자리에 오늘 우리가 서 있습니다.

지체가 아니라 오래 참으심
그렇다면 왜 아직 끝이 오지 않았을까요? 베드로는 이렇게 답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베드로후서 3:9, 12, 개역한글). 시간이 걸리는 것은 하나님의 무능이나 지체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오래 참으심입니다. 이 오래 참으심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해 줍니다. 회개의 문이 아직 열려 있으니 전파해야 할 긴급함, 그리고 그 문이 마침내 완성될 것이니 사모할 수 있는 소망입니다. 지상명령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
마태복음 24:14는 지도 위 어느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자리를 묻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한 마디, 이웃에게 건네는 복음 한 마디, 선교를 위해 드리는 헌신 한 걸음이 다니엘이 보았고 요한이 완성된 모습으로 본 그 약속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입니다. 통계나 숫자로 진척을 재려 하기보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는 말씀 앞에서 오늘 내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끝은 재난이 데려오지 않습니다. 복음이 완성되는 곳에 그 끝이 있고, 우리의 순종은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입니다.
기도와 헌신의 초청
주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소서.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이 시대를 살게 하시고, 제가 오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서게 하소서. 지상명령이 제 삶의 방향이 되게 하시고, 마태복음 24:14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날을 사모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