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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신앙의 시선으로 — 낯선 존재와 손잡은 자기희생, 그 사명의 완성

혼자 눈을 떴는데, 곁에 있던 두 사람은 이미 죽어 있고,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그 “여기”가 지구에서 12광년 떨어진 낯선 별의 궤도이고, 자신의 두 어깨에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려 있다면요? 앤디 위어(Andy Weir)의 SF 장편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 2021)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세속 베스트셀러 SF 소설을 신앙의 눈으로 다시 읽는다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정면으로 다루는 주제 — 자기희생, 낯선 존재와의 연대, 절망 속의 소망 — 은 성경이 이미 오래전부터 붙들어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겹침과 어긋남을 함께 짚어 보려 합니다.

NASA 태양역학관측위성이 촬영한 태양 표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태양 에너지를 갉아먹는 미생물이 지구의 태양을 어둡게 만드는 위기에서 출발한다.
사진: NASA/SDO(AIA) · 공개도메인 · 출처 Wikimedia Commons

앤디 위어가 그려낸 마지막 임무 — 저자와 줄거리

앤디 위어는 원래 소설가가 아니라 프로그래머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10대 시절 샌디아(Sandia) 국립연구소에서 인턴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해, 이후 25년 동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아메리카 온라인(AOL)에서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받은 스톡옵션을 팔아 생활비를 대며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09년부터 취미로 자신의 웹사이트에 연재한 SF 소설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소설이 바로 「마션」(The Martian)이며, 이 성공으로 위어는 프로그래머 본업을 접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코드를 짜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둘 다 큰 것을 작은 것들로 쪼개는 작업”이라고 말할 만큼, 공학적 사고방식을 집필에 그대로 가져옵니다.

「마션」이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 한 사람의 생존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결이 다릅니다. 실제로 이번 작품은 「마션」과 달리 철저히 혼자가 아닙니다.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헤일메리’ 호에서 깨어납니다. 함께 탔던 동료 둘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서서히 기억을 되찾으며 그는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깨닫습니다 — 태양 에너지를 갉아먹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가 지구의 태양을 비롯한 인근 항성들을 빠르게 어둡게 만들고 있고, 유독 타우 세티 항성계만 이 감염에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레이스는 그 이유를 밝혀내 인류를 구할 단서를 찾기 위해, 사실상 돌아올 기약이 없는 임무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투입된 과학자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는 40 에리다니 항성계에서 온 외계인 엔지니어 ‘로키’를 만나고, 종(種)이 전혀 다른 두 존재는 언어도 몸도 다르지만 함께 답을 찾아가는 동료가 됩니다. (이 서평은 결말은 다루지 않습니다.) 한국어판은 강동혁 번역으로 알에이치코리아(RHK)에서 원서와 세계 동시인 2021년 5월 출간되었습니다.

샌디에이고 코믹콘 패널에 참석한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저자 앤디 위어. 프로그래머 출신으로, 전작 「마션」의 성공 이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
사진: Gage Skidmore · CC BY-SA 3.0 · 출처 Wikimedia Commons

겹치는 통찰 — 자기희생과 낯선 존재와의 연대

이 소설이 그리스도인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 첫 번째 지점은 그레이스가 감당하는 희생의 무게입니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이 임무를 맡은 것이 아닙니다. 낯선 어둠 속에서, 돌아갈 길이 불확실한 채로, 그는 자신이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남은 삶을 겁니다. 성경은 이런 종류의 사랑에 이름을 붙여 두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개역한글)

물론 그레이스의 희생과 그리스도의 자기 낮추심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가 그리는 궤적 — 편안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알려지지 않은 자리로 내려가 종의 형체를 취하는 것 — 은 이 소설이 감정적으로 가장 힘주어 그리는 순간과 놀랍도록 겹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개역한글)

어두워진 붉은 항성을 바라보는 우주비행사의 실루엣
낯선 항성 앞에 홀로 선 사명 — 그레이스가 짊어진 고독한 짐의 개념적 표현.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두 번째 겹침은 ‘로키’와의 관계입니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생물학적으로도, 사고방식으로도, 심지어 감각기관마저도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말조차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두 존재는 두려움을 넘어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 그 협력이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됩니다. 성경에도 이와 닮은 장면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평생 “이방인과는 교제하지 말라”고 배워 온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전혀 다른 부류로 여겨지던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사도행전 10:28, 개역한글)

바울은 이 원리를 더 넓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개역한글)

물론 소설 속 연대의 근거와 성경이 말하는 연합의 근거는 다릅니다. 그레이스와 로키를 묶는 것은 공동의 위기와 상호 존중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이 하나 되는 근거는 십자가로 허물어진 담입니다(엡 2:14). 그러나 “전혀 다른 존재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이야기의 정서 자체는, 복음이 인간이 세운 온갖 경계를 넘어선다는 진리를 떠올리게 하는 유비로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손과 외계 생명체의 손이 우주를 배경으로 맞닿는 장면
전혀 다른 존재가 손을 맞잡는 협력 — 그레이스와 로키의 연대를 개념적으로 표현.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성경이 먼저 본 사명의 무게 — 지상명령과의 표면적 유사성

이 소설의 서사 구조 자체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완수해야 인류(혹은 더 넓은 세계)가 산다는 구조입니다. tgc.kr이 붙들고 있는 지상명령의 파송 구조와 표면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8-20, 개역한글)

주목할 지점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낯선 곳으로 보내시면서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레이스는 철저히 혼자 그 짐을 짊어져야 했지만(로키를 만나기 전까지는 더더욱), 지상명령을 받은 제자들에게는 처음부터 함께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지구 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
지구 궤도의 국제우주정거장. 낯선 세계로 홀로 보내지는 사명이라는 소설의 서사 구조는 지상명령의 파송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NASA(STS-134) · 공개도메인 · 출처 Wikimedia Commons

갈라지는 지점 — 영웅적 희생과 그리스도의 대속은 다르다

여기서 분별이 필요합니다. 그레이스의 희생은 고귀하지만, 어디까지나 물리적 생존의 문제를 과학과 공학으로 풀어내는 인간 영웅의 희생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되풀이될 수 없는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6, 개역한글)

“단번에”라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그레이스의 이야기는 감동적인 허구이고, 언제든 다른 위기, 다른 영웅, 다른 희생으로 반복해서 쓰일 수 있는 이야기 구조입니다(실제로 SF 장르 전체가 이런 서사를 수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은 반복도, 보완도 필요 없는 완결된 사건입니다. 이 소설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감동을 구원 자체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소설은 “인류가 스스로의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가”를 묻고, 성경은 “우리 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대신 해결하셨다”고 답합니다. 질문의 층위 자체가 다릅니다.

완전한 어둠 속 우주선 창문으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
어둠 속에 스며드는 한 줄기 빛 — 절망 가운데 소망의 개념적 표현.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문학적 평가 — 하드SF의 정교함과 갈린 호불호

신앙적 독법을 잠시 내려놓고 순수하게 작품성을 평가한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탄탄한 하드SF입니다. 위어는 궤도역학·화학·미생물학의 세부를 꼼꼼히 조사해 문제 해결형 플롯을 정교하게 쌓아 올렸고, 특히 로키라는 캐릭터의 언어·사고 체계를 구축한 방식은 평단의 폭넓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커커스 리뷰는 이 작품을 “과학소설의 걸작(a science-fiction masterwork)”이라 평했고, 2021년 드래곤상 최우수 SF 장편 부문을 수상했으며 2022년 휴고상 장편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습니다(수상작은 아케이디 마틴의 「A Desolation Called Peace」였습니다).

파크스 전파망원경 관측소
위어가 소설 속 과학적 디테일을 쌓아 올리는 데는 실제 천문 관측의 정교함이 배경이 된다. 사진은 파크스 전파망원경(호주).
사진: D0a5l0e6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다만 평가가 전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알렉 네발라리)는 위어 특유의 유머가 마치 “조스 휘던 각본만 먹고 자란 알고리즘이 뱉어내는 농담”처럼 상투적으로 느껴진다고 꼬집었고, 워싱턴포스트(메리 로비네트 코왈)는 주인공의 영리함을 과시하려는 듯 서사의 상당 부분이 존재한다며 그 영리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과학적 문제 해결의 쾌감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강점이, 정서적 깊이를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추천 독자

하드SF 특유의 과학적 디테일을 즐기는 독자,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내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소명과 헌신을 이야기 나누는 청년부·제자훈련 소그룹이라면, 그레이스의 희생과 그리스도의 대속이 어디서 겹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를 함께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나눔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신앙 서적이 아니라 철저히 세속적인 SF 소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이 주는 감동을 있는 그대로 즐기되, 그 감동이 가리키지 못하는 자리 — 죄 사함과 부활의 소망 — 는 성경이 채워야 할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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