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물음에 프로그램이나 기법이 아니라 한 문장으로 답하셨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을 처음으로 예고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은 짧지만, 이 한 절 안에 자기 부인, 날마다 지는 십자가,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삶이라는 제자도의 세 기둥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헌장(憲章)은 오늘 우리에게도,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모든 훈련의 맨 처음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개역한글)

수난 예고 바로 다음에 주어진 부르심
이 말씀은 진공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앞 문맥을 보면,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예수님을 고백한 직후입니다(눅 9:20). 그 고백에 이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9:22, 개역한글)
순서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너희도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부르십니다. 즉 제자도는 고난받는 메시아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스승이 가시는 길과 제자가 가는 길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24-25절은 그 부르심의 근거를 목숨의 역설로 설명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가복음 9:24, 개역한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가복음 9:25, 개역한글)
자기를 붙들면 잃고, 그리스도를 위해 내려놓으면 얻는다 — 이 역설이 9장 23절의 자기 부인을 떠받치는 논리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 자기 정의의 권한을 넘겨드림
첫 번째 명령은 “자기를 부인하라”입니다. 여기 ‘부인하다’로 옮긴 헬라어는 ‘아르네오마이(ἀρνέομαι)’ 계열의 동사로, 흥미롭게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눅 22:34, 61) 쓰인 것과 같은 뿌리를 가진 말입니다(베드로의 부인과 병행 본문 마 16:24·막 8:34에는 강조형 ‘아파르네오마이’가 쓰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했지만, 제자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이것은 자기 학대나 금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 —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지를 스스로 정하던 권한 — 을 그리스도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자기 부인의 실체를 다른 본문으로 더 깊이 설명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개역한글)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곧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빈자리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 단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두 번째 명령에는 누가복음만의 독특한 단어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바로 “날마다”입니다. 같은 장면을 기록한 마태복음 16장 24절과 마가복음 8장 34절에는 이 표현이 없습니다. 오직 누가만이 “날마다(καθ’ ἡμέραν, 카트 헤메란) 제 십자가를 지고”라고 적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한 번의 극적인 결심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삶의 방식임을 못 박은 것입니다.
1세기 청중에게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결코 은유적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σταυρός, 스타우로스)는 로마의 사형 도구였고, 사형수는 처형장까지 자기 형틀을 직접 짊어지고 걸어가야 했습니다(예수님도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요 19:17). 그러니 “제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은 죽음을 각오한 순종, 곧 매일 자기를 사형에 내어주는 삶을 뜻했습니다. 성경은 이 매일의 죽음을 예배의 언어로도 표현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개역한글)
‘산 제사’라는 말은 그 자체로 역설입니다. 제사는 죽는 것인데, 산 채로 드리라 하십니다. 날마다 제단 위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 — 그것이 곧 날마다 지는 십자가입니다.

“나를 좇을 것이니라” — 고난받는 주를 따라가는 길
세 번째 명령은 “나를 좇으라”입니다. ‘좇다’로 옮긴 헬라어(ἀκολουθέω, 아콜루테오)는 단순히 뒤에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삶과 방향에 지속적으로 동행하며 순종하는 제자의 걸음을 뜻합니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분을 따라가기 위한 문입니다. 누가는 뒤에서 이 조건을 한 번 더 못 박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7, 개역한글)
제자 됨은 십자가를 지고 좇는 것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몇몇 헌신된 소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 과정이 아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라는 말씀대로 그분을 따르려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자기 부인은 제자 재생산의 문(門)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훈련의 핵심 원리에 이릅니다. tgc.kr 제자훈련의 초점은 언제나 “제자가 제자를 세우는” 재생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재생산이 자기 부인이라는 죽음을 통과해야 비로소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개역한글)
죽지 않은 밀알은 한 알 그대로입니다. 자기를 지키기만 하는 제자는 결코 재생산하지 못합니다. 오직 땅에 떨어져 죽은 밀알 —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진 사람 — 만이 많은 열매, 곧 또 다른 제자를 맺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으면 그것은 재생산이 아니라 자기 확장에 그칩니다. 자기를 비운 종만이 자기 이익이 아니라 남을 세우는 섬김으로 다른 제자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기에게 들은 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라고 당부한 재생산의 사슬(딤후 2:2)도 바로 이 죽음의 원리 위에 서 있습니다. 자기 부인(눅 9:23) → 죽음을 통한 열매(요 12:24) → 또 다른 제자로의 재생산(딤후 2:2). 이것이 성경이 그리는 제자훈련의 뼈대입니다.

오늘의 실천 — 날마다 지는 십자가에서 재생산까지
그렇다면 이 말씀을 오늘 어떻게 살아 낼 수 있을까요? 네 가지 걸음을 제안합니다.
첫째, 날마다의 자기 부인을 구체적인 결단으로 삼으십시오. “날마다”라는 말씀대로, 자기 부인은 한 번의 헌신 예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 나의 주권을 주께 드립니다”라고 고백하는 작은 결단이 십자가를 지는 삶의 출발점입니다.
둘째, 자기 판단보다 그리스도를 더 신뢰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자기 부인은 내 생각과 감정이 옳다고 느껴질 때에도 말씀과 기도 앞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 위에 서 있기에, 우리는 자기를 내려놓는 것을 손해가 아니라 신뢰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셋째, 순종에는 고난이 따를 수 있음을 각오하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말합니다(행 14:22, 개역한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편안함을 내려놓고 불편한 순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목숨을 잃음으로 얻는 참생명이 있습니다(눅 9:24).
넷째, 자기를 비운 삶을 나누어 또 다른 제자를 세우십시오. 자기 부인은 골방의 경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밀알이 죽어 열매를 맺듯, 자기를 비운 삶은 다른 한 사람에게 시간과 삶을 나누는 섬김으로 이어질 때 재생산됩니다. 한 사람을 곁에 두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보여 주는 것 — 그것이 제자가 제자를 세우는 길입니다.
기도와 헌신으로의 초청
누가복음 9장 23절은 우리를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으로 초청합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부활로 가는 문이며, 밀알의 죽음은 결핍이 아니라 많은 열매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조용히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님, 오늘 나의 주권을 내려놓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게 하시고, 자기를 비운 저를 통해 또 한 사람의 제자가 세워지게 하소서.” 이 짧은 기도가 제자로 사는 하루의 첫걸음이 됩니다. 스승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참고 자료
- 개역한글판 누가복음 — 위키문헌(공개도메인 성경 본문)
- 대한성서공회 — 성경 본문·번역 안내
- BibleRef, 누가복음 9:23 주해
- Crossway, “What Does Luke 9:23 Mean?” (C. D. Agan III)
- Ligonier Ministries, “What Does It Mean to Take Up My Cross Daily?”
- Bible Hub, 헬라어 ἀπαρνέομαι(aparneomai, G533) — 부인하다(베드로의 부인·병행 본문 마 16:24·막 8:34)
- Bible Hub, 헬라어 σταυρός(stauros, G4716) — 십자가
- Bible Hub, 누가복음 9:23 헬라어 인터리니어(καθ’ ἡμέραν ‘날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