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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강해 — 가인과 아벨, 두 제사에서 갈라진 두 길

이 글의 성경 인용은 모두 개역한글판(1961, 공개도메인)을 따릅니다.

밤 풍경 속 두 제단에서 연기가 오르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장면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바침」(18세기) — 오른쪽 제단에서 연기가 곧게 오르고 왼쪽은 낮게 깔려, 열납된 제사와 그렇지 못한 제사를 대비한다. 그림: Claude-Joseph Vernet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창세기 3장은 사람이 에덴에서 쫓겨나는 장면으로 닫혔습니다. 4장은 그 닫힌 문 밖, 곧 저주받은 땅에서 시작하는 인류의 첫 세대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에덴 밖 첫 이야기는 결혼도, 노동도, 예배도 아닌—형이 아우를 죽이는 이야기입니다. 3장에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가 깨졌다면, 4장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깨집니다. 죄는 한 세대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으로부터 형제를 향한 살인으로 번져 나갑니다. 그러나 이 어두운 장에도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물으시고, 여전히 찾으시며, 마지막에는 “다른 씨”를 주십니다. 창세기 4장은 죄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약속(창 3:15)을 이어 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지팡이를 짚은 목자와 개, 풀밭에 쉬는 양 떼
아엘베르트 카위프, 「목장의 양 떼」(1645~1655년경), 슈테델 미술관 — 아벨은 “양 치는 자”였다(창 4:2). 그림: Aelbert Cuyp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사람, 두 제사 (창 4:1-5)

본문은 첫 형제의 출생과 직업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창세기 4:1-2, 개역한글)

하와는 첫 아들을 안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고백합니다. 저주의 땅에서도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고백입니다. 이윽고 두 형제가 각자의 직업을 따라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세기 4:3-5, 개역한글)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본문을 자세히 보면 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신 것은 먼저 “아벨과 그 제물”(4:4)이고, 물리치신 것은 “가인과 그 제물”(4:5)입니다. 성경은 제물보다 드리는 사람을 먼저 말합니다. 곡식 제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훗날 율법도 소제(곡식 제사)를 규정합니다. 문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가장 분명히 풀어 주는 것은 다른 성경 본문, 곧 히브리서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아벨의 제사를 “믿음으로 드린 더 나은 제사”라 부릅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곧 가장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의 제사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최선을 바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반면 가인의 제사에서는 그런 마음을 찾을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회개가 아니라 분노로 반응합니다(4:5). 예배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예배가 거절당할 때 드러나는 태도에서 판가름 납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고, 가인은 형식으로 드렸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창 4:6-7)

분노한 가인에게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먼저 경고하십니다. 아직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6-7, 개역한글)

하나님은 죄를 “문에 엎드린” 짐승처럼 그리십니다. 죄는 가인의 마음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를 삼키려 기다립니다. 흥미롭게도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말씀은 바로 앞 장의 한 구절과 같은 짜임새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하셨는데, 4:7의 “소원”과 “다스리다”는 3:16의 “사모하고”와 “다스리다”와 같은 히브리어 표현입니다(개역한글은 “사모”와 “소원”으로 다르게 옮겼습니다). 죄가 사람을 차지하려 달려들지만, 사람은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장의 긴장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명하셨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기는커녕 죄에게 삼켜집니다. 창세기 4장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문 앞의 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가인의 실패로 증언합니다. 죄를 참으로 다스리실 “여자의 후손”(창 3:15)이 오시기까지, 죄를 다스리라는 명령은 인간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이 명령의 성취를 그리스도 안에서 찾습니다—“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롬 6:14)라는 약속은, 가인이 이루지 못한 “죄를 다스림”을 은혜로 이루시는 복음입니다.

수확한 밀을 볏가리로 세워 둔 밭
밭에 세운 밀단(볏가리).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땅의 소산”을 제물로 드렸다(창 4:2-3). 사진: Powerhouse Museum, Sydney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 4:8-10)

경고를 받고도 가인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마침내 인류 최초의 살인이 일어납니다.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세기 4:8, 개역한글)

본문은 가인이 아벨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고, 다만 “고하니라 그후… 쳐죽이니라”로 담담하게 적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에서 비롯된 분노가 형제를 향한 손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요한은 이 첫 살인의 뿌리를 정확히 짚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요한일서 3:12, 개역한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까닭은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예배가 악한 마음을 찔렀고, 그 찔림이 미움으로, 미움이 살인으로 자랐습니다. 요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움 자체를 살인과 같이 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요일 3:15). 가인의 손이 아벨을 치기 전에, 그의 마음은 이미 아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살인 직후 하나님은 다시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 물음은 3장에서 이미 들은 물음과 짝을 이룹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창세기 4:9, 개역한글)

하나님은 3장에서 숨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물으셨고, 이제 4장에서 아우를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두 물음 모두 하나님이 몰라서 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스스로 직면하게 하시는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겼듯, 가인은 아예 발뺌합니다—“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게다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라며 형제에 대한 책임 자체를 부정합니다. 죄는 관계를 깨뜨릴 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책임감마저 마비시킵니다.

몽둥이를 치켜든 가인이 쓰러진 아벨을 내리치는 장면
페테르 파울 루벤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임」(1608~1609년), 코톨드 갤러리(런던) — 배경 제단의 연기 곁에서 첫 살인이 벌어진다(창 4:8). 그림: Peter Paul Rubens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땅에서 호소하는 피 (창 4:10-15)

가인은 침묵하려 했지만, 땅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세기 4:10, 개역한글)

아벨은 죽어 말이 없지만, 그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앞서 히브리서가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한 것이 이것입니다. 이 “호소하는 피”는 성경 전체를 관통해, 마침내 또 하나의 피와 나란히 놓입니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4, 개역한글)

아벨의 피는 땅에서 “호소”하며 심판과 보응을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합니다—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정죄가 아니라 사죄를 외칩니다. 가인이 흘린 피는 형제를 죽인 피였지만, 예수께서 흘리신 피는 원수 된 자를 살리는 피입니다. 창세기 4장의 첫 피가 부르짖은 그 자리에, 갈보리의 피가 대답합니다. 예수님도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마 23:35) 흘린 모든 의로운 피를 기억하시며, 아벨을 순교자의 첫 자리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땅의 저주와 유리하는 삶을 선고하십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세기 4:11-12, 개역한글)

그러나 심판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가인이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4:14)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그를 지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창세기 4:15, 개역한글)

살인자에게조차 하나님은 보호의 “표”를 주십니다. 심판은 정당하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그 심판보다 큽니다. 3장에서 벌거벗은 사람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던 그 손이, 4장에서 살인자를 지키는 표를 새기십니다.

가인의 후예와 라멕의 노래 (창 4:16-24)

가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자기 길로 갑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4:16-17, 개역한글)

가인의 후예는 성을 쌓고, 목축과 음악과 기술 문명을 일으킵니다(4:20-22). 이 진보 자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능력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 문명의 정점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찬양이 아니라 복수의 노래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4:23-24, 개역한글)

라멕은 자신에게 상처 입힌 자를 죽이고는, 하나님이 가인에게 베푸신 “칠 배” 보호(4:15)를 자기 복수의 “칠십칠 배”로 뒤틀어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언어가 인간의 폭력의 언어로 변질된 것입니다. 죄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갈수록 옅어지지 않고 오히려 짙어집니다. 가인의 살인이 라멕의 자랑이 되기까지, 죄는 문 앞에 엎드려 있다가 마침내 문명 전체를 삼켰습니다. 유다서는 이런 삶을 “가인의 길”이라 부릅니다—“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유 1:11).

죽은 아벨과 애통하는 아담과 하와, 머리를 감싸고 도망치는 가인, 붉은 해
윌리엄 블레이크, 「아담과 하와가 아벨의 시신을 발견하다」(1826년), 테이트 — 죽은 아벨 곁에서 부모가 애통하고 가인은 머리를 감싸며 달아난다. 그림: William Blake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다른 씨, 셋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 (창 4:25-26)

가인의 계보가 라멕의 복수의 노래로 어두워진 바로 그때, 본문은 시선을 다른 계보로 옮깁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세기 4:25, 개역한글)

하와는 셋을 “다른 씨”라 부릅니다. 아벨은 죽었고 가인은 떠났지만, 하나님은 약속의 통로를 끊지 않으십니다. 이 “씨”라는 말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3장에서 “여자의 후손(씨)”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창 3:15) 약속하셨습니다. 아벨의 죽음으로 끊어질 뻔한 그 약속의 계보가, 셋을 통해 이어집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이 셋의 계보를 아담과 하나님께로까지 거슬러 올리며(눅 3:38), 그 계보의 끝에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가 계심을 증언합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26, 개역한글)

가인의 계보가 “성”을 쌓고 자기 이름을 높이는 동안(4:17), 셋의 계보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시작됩니다. 인류 역사에 두 흐름이 갈라집니다—자기 이름을 부르는 도시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은 성경 끝까지 이어져 복음의 초청이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 개역한글)

에노스 시대에 “비로소” 시작된 그 부름이, 오늘 복음을 듣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로 흘러왔습니다. 창세기 4장은 첫 살인으로 어두워진 장이지만, 그 마지막 절은 예배와 구원의 첫 새벽을 밝힙니다.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가인과 그 일족의 행렬
페르낭 코르몽, 「가인」(1880년), 오르세 미술관 — 저주를 받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 가인과 그 일족의 행렬(창 4:12). 그림: Fernand Cormon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길: 가인의 길과 아벨의 믿음

창세기 4장은 두 형제로 시작해 두 계보로 갈라지는, 결국 두 길의 이야기입니다. 한쪽에는 형식적인 예배, 다스리지 못한 죄,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 자기 이름을 높이는 문명, 그리고 복수의 노래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인의 길”(유 1:11)이라 부릅니다. 다른 쪽에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 죽어서도 말하는 의로운 피, “다른 씨”로 이어지는 약속,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것이 “아벨의 믿음”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창세기 4장에서 멈추지 않고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아벨의 피는 예수의 피에서 응답을 얻고(히 12:24), 죽어서도 말하는 아벨의 믿음은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사람들의 첫 자리에 섭니다(히 11:4). 셋의 “다른 씨”는 마침내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4장은 인류의 첫 비극을 기록하지만, 그 비극을 뚫고 이어지는 은혜의 실을 놓치지 않습니다.

흙 밖에서 믿음으로 드리는 제자

창세기 4장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 안에도 가인이 있고 아벨이 있습니다. 이 장은 에덴 밖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네 가지를 가르칩니다.

첫째, 예배를 형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리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제물보다 먼저 드리는 사람입니다(4:4). 아벨처럼 가장 좋은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입니다(히 11:4).

둘째, 문 앞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죄는 마음 문에 엎드려 우리를 삼키려 기다립니다(4:7). 분노와 미움을 방치하면 그것이 살인의 씨가 됩니다(요일 3:15). 그러나 우리는 가인처럼 홀로 죄와 싸우지 않습니다—“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롬 6:14)라는 은혜 안에서 죄를 다스립니다.

셋째, 형제를 지키는 자가 되라.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물으며 책임을 부정했습니다(4:9). 그러나 제자는 형제를 지키고 세우는 자입니다. 서로를 미워하는 “가인의 길”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길로 부름받았습니다.

넷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라. 창세기 4장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26)로 닫힙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초청도 같습니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른 자를, 하나님은 모든 족속에게 보내십니다. 가인이 잃어버린 형제 사랑을 회복하고, 아벨이 죽어서도 전한 믿음을 이어, 온 땅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지상명령(마 28:18-20)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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