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은 언제나 한 사람의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2장까지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발걸음 —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애굽에서 벧엘로, 헤브론에서 브엘세바로, 마침내 모리아산까지 — 을 따라가 보면, 그 지리적 이동 하나하나가 오늘 우리가 걷는 제자도의 길과 정확히 겹칩니다. 부르심에 대한 순종, 실패 후의 회복, 은혜로 시작되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온전케 하는 순종. 아브라함의 여정은 제자훈련의 지도이기도 합니다.

부르심에 순종하다 — 제자도의 첫 걸음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세기 12:1-4, 개역한글)
하나님의 명령에는 목적지가 없었습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뿐, 그 땅이 어디인지는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4절은 단 한 문장으로 아브람의 응답을 요약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설명도, 망설임의 기록도 없습니다. 신약은 이 장면을 믿음의 정의로 되짚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브리서 11:8-10,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한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제자도의 첫 걸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목적지의 전모를 다 보고 나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분을 신뢰하며 지금 아는 것만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란을 떠날 때 자신의 여정이 어디서 끝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걸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예배의 자리로 — 벧엘로 돌아가다
아브람의 여정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직선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자 그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2:10, 개역한글)
애굽에서 아브람은 사래를 누이라 속이는 실수까지 범합니다(창세기 12:11-13). 그러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그가 향한 곳은 새로운 땅이 아니라, 전에 제단을 쌓았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13:1-4, 개역한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 — 이 표현이 벧엘 귀환의 의미를 압축합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실패를 딛고 새 출발점을 찾은 것이 아니라, 처음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제자의 여정도 완벽한 상승 곡선이 아닙니다. 흔들리고 실수한 뒤에도,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그 예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패턴입니다. 이후 아브람은 장막을 헤브론 마므레로 옮겨 다시 단을 쌓았습니다.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8, 개역한글)
세겜의 첫 제단(창세기 12:7), 벧엘의 회복된 제단(창세기 13:4), 헤브론의 제단(창세기 13:18) — 아브람의 여정 지도에는 새 장막을 칠 때마다 제단이 함께 세워집니다.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예배의 자리도 함께 옮겨진 것입니다.

믿음이 의로 여겨지다 — 은혜로 시작되는 제자훈련
아브람에게는 여전히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밖으로 이끌어 밤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5-6, 개역한글)
아브람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어떤 행위나 성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한 절을 근거로 복음의 핵심을 설명합니다.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로마서 4:3, 개역한글)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로마서 4:18-22, 개역한글)
갈라디아서는 이 원리를 오늘의 신자에게까지 확장합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6-9, 개역한글)
제자훈련이 세워지는 지반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자도는 성취해야 할 자격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받은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아브람이 별을 세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앞에 놓인 여정의 전체 그림을 다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약속하신 이를 믿을 뿐입니다.

순종으로 온전해지는 믿음 — 모리아산의 시험
믿음으로 시작된 여정은 순종으로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에서 가장 가파른 지점은 모리아산이었습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1-2, 개역한글)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걸어 그 산에 이르렀고, 손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11-12,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이 순종의 근거를 부활 신앙으로 설명합니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17-19, 개역한글)
야고보서는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합니다.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3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야고보서 2:21-23, 개역한글)
히브리서는 믿음이 순종의 동력이었다고 말하고, 야고보서는 순종이 믿음을 온전케 했다고 말합니다. 두 본문은 서로 다른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진리를 두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창세기 15장의 믿음과 창세기 22장의 순종은 분리된 두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정 안에서 자란 하나의 믿음입니다. 제자도 역시 믿기만 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순종의 걸음으로 이어질 때 온전해집니다. 아브라함은 그 산의 이름을 “여호와이레” —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 라 불렀습니다(창세기 22:14).

함께 걷는 여정 — 오늘의 제자훈련
아브람의 여정은 처음부터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창세기 12:4, 개역한글)라는 짧은 구절이 보여 주듯, 믿음의 여정은 누군가와 동행하며 걷는 길이었습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같은 원리를 부탁합니다.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2, 개역한글)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 디모데에게서 충성된 사람들에게, 다시 그들에게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 이 절 하나에 네 세대의 재생산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이 원리는 구체적인 사역의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온누리교회는 두란노 출판사를 통해 마태복음 28:19-20을 근거로 한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 커리큘럼을 개발·보급해 왔고, 이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다른 한 사람과 인격적으로 만나 말씀을 매개로 신앙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 도슨 트로트맨이 시작한 내비게이터선교회가 디모데후서 2:2를 사역의 근거 구절로 삼아, 해군 사병들을 대상으로 인격 대 인격 성경 교육과 “영적 재생산”을 실천하며 확산되었습니다. 방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 제자는 홀로 완성되지 않고, 함께 걷는 누군가를 통해 다음 사람에게로 이어집니다.

오늘 나의 여정 — 실천 적용
- 나의 “우르”를 떠나기로 결단하십시오. 아브람처럼 목적지를 다 알지 못해도, 부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금 순종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제자도의 시작입니다.
- 정기적으로 “벧엘”로 돌아가십시오. 실패하고 흔들렸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기 전에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예배와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그 이름을 부르십시오.
- 한 사람을 붙들어 함께 걸으십시오. 디모데후서 2:2의 원리처럼, 큰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한 사람과 정기적으로 말씀을 나누는 것에서 제자훈련은 시작됩니다.
- “여호와이레”를 신뢰하십시오. 순종의 걸음이 두려운 지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이미 그 자리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참고 자료
- 창세기 12장 (개역한글, bible.com)
- 창세기 13장 (개역한글, bible.com)
- 창세기 15장 (개역한글, bible.com)
- 창세기 22장 (개역한글, bible.com)
- 히브리서 11장 (개역한글, bible.com)
- 로마서 4장 (개역한글, bible.com)
- 갈라디아서 3장 (개역한글, bible.com)
- 야고보서 2장 (개역한글, bible.com)
- 디모데후서 2장 (개역한글, bible.com)
- Ur (Wikipedia) — 갈대아 우르의 위치
- 내비게이터선교회 연혁(The Navigators History)
- 두란노 ‘일대일 제자양육’ 소개(온누리교회 커리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