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시고 마지막 명령을 남기셨다. 우리가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 부르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개역한글)
이 짧은 명령 안에 세 가지 놀라운 선언이 겹쳐 있다. 예수님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고, 그 명령은 “모든 족속”에게 미치며, 그분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계신다. 왜 그분께 그런 권세가 있는가? 왜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족속인가? 어떻게 늘 함께 계시는가? 이 물음의 답은 지상명령을 주시기 직전,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에 있다. 지상명령은 허공에서 떨어진 의무가 아니라, 새 언약이 흘러넘쳐 열방으로 번지는 물결이다.

예수님이 피로 세우신 새 언약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탁에 앉으셨다. 그리고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개역한글)
‘새 언약’은 예수님이 그 자리에서 처음 지어내신 말이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33, 개역한글)
새 언약의 표지는 셋이다. 법이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고,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을 친밀히 아는 백성이 되며,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라는 죄 사함이 주어진다. 예수님은 바로 이 언약을 자신의 피로 실제로 세우셨다(고린도전서 11:25).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레미야 31장을 그대로 인용하며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보”라 부른다(히브리서 8:6-13, 9:15). 성경이 성경을 풀어 주는 자리다 — 옛 예언의 ‘새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성경 스스로 말한다.

새 언약은 ‘새 마음’을 준다
옛 언약의 법은 밖에서 주어졌다. 돌판에 새겨져 사람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법은 안에서 자란다. 에스겔은 그 내면의 변화를 이렇게 예언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26-27, 개역한글)
여기에 지상명령의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의 비밀이 있다. 새 언약 백성의 순종은 억지로 짜내는 규칙 준수가 아니다. 하나님이 굳은 돌 같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고(겔 11:19-20), 그 마음에 친히 법을 새기시며(렘 31:33), 성령을 그 속에 두어 행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사람을 옥죄는 규범 교육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을 함께 발견하고 살아내도록 돕는 일이다.

한 민족의 언약이 열방으로 열리다
그런데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은 분명히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맺은 것이다(렘 31:31). 그렇다면 어떻게 “모든 족속”에게로 넓어지는가? 답은 ‘새 언약이 원래 만민의 것’이라는 막연한 일반화가 아니다. 그 뿌리는 훨씬 오래된 아브라함의 약속에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세기 12:3, 개역한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땅의 모든 족속”을 바라보고 계셨다. 바울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되었고(갈라디아서 3:14), 그리스도께 속한 이방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으며(갈 3:29), 그리스도의 피가 유대인과 이방인 “둘로 하나를” 만들었다(에베소서 2:13-14, 3:6). 바울은 이것을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 받는 그림으로 설명한다(로마서 11:17).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언약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 뿌리에 접붙여져 함께 진액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지상명령의 “모든 족속”(마 28:19)은 우연한 확장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모든 족속”(창 12:3)의 약속이, 새 언약 안에서 마침내 명령으로 굳어진 것이다.

새 언약의 성령이 지상명령의 능력이다
새 언약은 처음부터 성령의 언약이었다.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겔 36:27)라는 약속이 그것이고, 요엘은 그 성령이 “만민에게” 부어지리라 예언했다(요엘 2:28).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곧바로 나가지 말고 먼저 기다리라 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개역한글)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사도행전 2장),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은 열방을 향한 담대한 증인으로 바뀌었다. 베드로는 그 광경이 바로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선포했다(행 2:16-21). 지상명령은 결국 우리의 종교적 열심으로 밀어붙이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새 언약의 성령이 안에서부터 밀어내는 삶이다. 마음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 안에 부어진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오늘, 새 언약 백성으로 산다는 것
지상명령의 문장에서 실제 명령은 하나, “제자를 삼으라”이다.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그 하나를 이루는 방법이다. 세례는 새 언약 백성이 되었음을 세상 앞에 새기는 표이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마음에 새겨진 법을 함께 살아내는 훈련이며, 그 훈련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2, 개역한글)
그러니 지상명령을 거창한 프로그램으로만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대개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내 곁의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에게 복음을 나누고, 함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 새 언약이 내 안에서 그 한 사람에게로 흘러가는 것, 그것이 제자를 삼는 일의 가장 작고 가장 진실한 모양이다.
다만 성경은 부드러운 경고도 함께 준다. 에베소 교회는 수고와 인내로 칭찬받았으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4-5, 개역한글)
그런데 이 편지를 받은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바로 그 지상명령의 일로 세운 교회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제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사도행전 19:5), 두란노 서원에서 두 해 동안 날마다 말씀을 강론하여 아시아에 사는 사람이 다 주의 말씀을 듣게 했다(행 19:8-1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행 19:20).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 — 이 글 첫머리에서 본 지상명령의 바로 그 방법(마 28:19-20)이, 에베소 교회가 처음부터 붙들었던 ‘처음 행위’였다.
그러므로 주님이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부르실 때, 그것은 이 교회가 처음부터 행하던 그 일 — 제자 삼고 세례 주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 곧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지상명령으로 돌아오라는 초청이다. 그리고 그 처음 행위는 ‘처음 사랑’과 하나로 묶여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상명령이라는 통로를 따라 열방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향한 처음 사랑이 식으면 그 사랑이 흘러가던 처음 행위도 멈추고, 처음 행위로 돌아서면 식었던 처음 사랑도 다시 타오른다. 사랑과 행위는 맞서지 않는다.
이 말씀은 정죄가 아니라 초청이다 — “처음 행위를 가지라.” 돌아오면 된다.
지상명령은 무겁게 지워진 짐이 아니라, 새 언약의 기쁨이 흘러넘치는 통로다. 우리를 그 명령의 문 앞에 세우신 분은,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신 바로 그분이다. 그리고 그분의 마지막 약속이 우리를 붙든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새 언약을 세우신 그분이, 그 언약을 열방에 전하는 우리와 끝까지 함께 계신다.
본문의 성경 인용은 공개도메인인 개역한글판(1961)을 따랐다.
참고 자료
- 「새 언약(New Covenant)」, GotQuestions
- 「대사명(The Great Commission)」, GotQuestions
- 「오순절(The Day of Pentecost)」, GotQuestions
- “The New Covenant”, Ligonier Ministries
- 「새 언약」, 위키백과
- 「대사명」,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