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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 강해 — 우리 이름을 내자던 바벨탑,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하신 하나님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던 시절, 사람들은 벽돌을 굽고 역청을 이겨 하늘에 닿을 탑을 쌓기 시작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그 한마디 속에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주신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려는 인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창세기 11장은 그 반역의 전말과, 그 잿더미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기로 작정하셨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장이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바벨탑(비엔나본)
피터르 브뤼헐(父)이 그린 <바벨탑>(비엔나본, 1563년경) — 사진: Pieter Brueghel the Elder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본문 — 창세기 11:1-32 (개역한글)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0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 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 창세기 11:1-32, 개역한글(1961)

문맥 — 10장이 보여준 결과, 11장이 밝히는 원인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에게서 나온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창 10:32, 개역한글)는 결과를 먼저 보여주었다. 그런데 11장은 시간을 되짚어, 그 나뉨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한다. 10장 곳곳에 이미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창 10:31, 개역한글 — 10:5·10:20에도 같은 취지의 표현이 반복된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11장 1절은 정반대로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창 11:1, 개역한글)고 말한다. 언어가 여럿으로 갈라진 10장의 세계와, 언어가 하나였던 11장의 출발점은 시간 순서상 11장이 먼저다. 즉 창세기는 “무엇이 있었는가”(10장의 목록)를 먼저 펼쳐 보인 다음,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11장의 사건)를 되짚어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의 무대는 “시날 평지”(창 11:2)다. 이곳은 이미 창세기 10:10에서 니므롯의 나라가 시작된 곳으로 언급된 바로 그 땅 — 바벨과 에렉과 악갓이 있던 메소포타미아 남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의 충적 평야다. 성경은 이 지역을 인류 최초의 조직적 반역이 일어난 자리로 두 번(10:10, 11:2) 겹쳐 가리킨다.

성경에 언급된 나라들을 표시한 고대 근동 지도
‘성경에 언급된 나라들의 지도’ — 노아의 후손이 흩어져 나간 세계와 바벨(바벨론)의 위치를 보여주는 19세기 성경지도. 사진: Dodd, Mead, and Company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강해

하나의 언어, 하나의 반역 — 성과 대를 쌓다 (1-4절)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 자리를 잡은 뒤 처음 한 일은 벽돌을 굽는 것이었다(창 11:3). 돌이 귀한 메소포타미아 충적 평야에서 진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고 역청으로 이어 붙이는 것은 실제로 이 지역 건축의 표준 공법이었다 — 성경의 묘사는 지리적 사실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문제는 재료가 아니라 목적이었다.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 11:4).

이 한 문장을 하나님이 앞서 주신 명령과 나란히 놓으면 반역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 사람을 지으신 그 자리에서부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 개역한글)고 복 주며 명하셨고, 홍수 뒤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도 같은 명령을 두 번이나 반복하셨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개역한글),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 개역한글). 세 번 거듭된 명령의 핵심은 “땅에 충만하라” — 곧 흩어져 온 땅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날 평지의 사람들은 정확히 그 반대를 선언한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성경 본문 자체가 이 대조를 명시적으로 세워 놓았다. 바벨탑 사건은 단순한 건축 야심이 아니라, 창조주의 반복된 명령에 대한 조직적 불순종이었다.

“우리 이름을 내고”라는 표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름을 주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쌓아 올린 탑으로 자기 이름을 세우려 했다. 이 갈망이 이 장 끝에서 어떻게 뒤집히는지는 아래 “주제”에서 다시 다룬다.

유프라테스 강과 메소포타미아 유역
유프라테스 강과 그 유역 — 창세기 11장 시날 평지가 자리한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진: Sgt. James McCauley/U.S. Army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고대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 점토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 바벨탑 사건 이전, 하나였던 언어 문명의 흔적. 사진: The Letterform Archive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강림하신 여호와, 그리고 흩으신 은혜 (5-9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창 11:5, 개역한글). 사람들은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기를 바랐지만,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보시기 위해 오히려 내려오셔야 했다. 인간이 쌓아 올린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낮은 것이었는지를 이 한 절이 말해 준다. 여호와께서는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창 11:6, 개역한글) 그 반역의 힘이 얼마나 커질지를 아시고, 스스로 결단하신다.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 개역한글).

그 결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 11:8, 개역한글). “흩어짐을 면하자”던 사람들의 계획은 정확히 그들이 피하려던 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바벨”이라 불리게 되었다 —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창 11:9, 개역한글). 사람들이 스스로 내려 했던 이름은, 결국 하나님이 심판으로 그들에게 붙이신 이름이 되었다.

이 흩으심은 단지 벌로 끝나지 않는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 17:26, 개역한글). 바벨에서 흩으신 그 사건조차, 민족들의 흥망과 거주지의 경계를 친히 정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 안에 있었다. 심판 뒤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역사 위에 있다.

이라크 우르에 남아 있는 지구라트 유적
이라크 우르(Ur)에 남아 있는 지구라트 유적 —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쌓아 올린 계단식 성전 구조물. 사진: U.S. Department of Defense(Cherie A. Thurlby)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바벨론 지구라트 에테메난키를 새긴 고대 석비
바벨론의 지구라트 ‘에테메난키’를 새긴 신바빌로니아 시대 석비 — 사진: 저작자 미상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셈의 계보 — 심판 뒤에 이어지는 약속의 줄기 (10-32절)

9절에서 흩으심의 심판이 선언된 직후, 본문은 곧바로 셈의 족보(10-26절)로 이어진다. 이 계보는 창세기 5장 아담의 족보와 같은 “낳고… 낳았으며” 형식을 취하지만,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창세기 5장은 이름마다 “그가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는 후렴구로 마무리되는데(예: 창 5:5, 개역한글), 이 죽음의 후렴구가 11장 족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죽음을 되뇌던 계보에서, 다음 이름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 계보로 흐름이 바뀐 것이다.

그 계보는 셈에서 아르박삿, 셀라, 에벨, 벨렉, 르우, 스룩, 나홀을 거쳐 데라에게 이르고,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창 11:26, 개역한글)로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27-32절은 데라의 가족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다가 하란에 머물게 된 사정을 전한다. 사래가 잉태하지 못했다는 30절의 짧은 언급은, 바로 다음 장에서 하나님이 그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으로 개입하실 것을 예비하는 복선이다. 바벨에서 흩어진 “땅의 열국 백성”(창 10:32, 개역한글)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이미 한 가족을 통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주제 — 바벨에서 지상명령까지, 흩어짐이 모임으로 완성되는 구속사

창세기 11장의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내고”(창 11:4, 개역한글) 싶어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을 세우신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개역한글). 인간이 자력으로 쌓아 올려 얻으려던 이름을,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람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기로 하신다. 그리고 그 약속은 곧바로 바벨에서 흩어진 바로 그 대상을 향한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 개역한글).

이 “모든 족속”이라는 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위에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은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개역한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 메소보다미아와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리비야, 로마에서 온 나그네와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까지(행 2:9-11) — 흩어진 언어의 자손들이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행 2:6, 개역한글) 하나님의 큰 일을 알아듣는다. 바벨에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창 11:7, 개역한글) 하신 그 언어의 저주가, 오순절에는 그대로 역전된다. 사람이 하나 되어 하늘에 닿으려던 자리에서 언어가 갈라졌다면,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신 자리에서는 갈라진 언어들 그대로 하나의 복음이 전해진다.

지오토가 그린 오순절 성령 강림
지오토 디본도네가 그린 <오순절>(14세기) — 성령이 불의 혀같이 각 사람 위에 임하신 사도행전 2장의 장면. 사진: Giotto di Bondone and workshop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개역한글). 바벨에서 흩어진 “모든 족속”, 아브람에게 복 주기로 약속하신 그 “모든 족속”은, 이제 교회가 가서 제자 삼아야 할 “모든 족속”이 된다. 이 구속사의 궤적은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개역한글). 바벨에서 흩어졌던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가(계 5:9, 개역한글), 흩어진 그 모습 그대로 보좌 앞에 다시 모인다. 창세기 11장의 흩으심은 끝이 아니라, 지상명령을 거쳐 마침내 하나가 되는 구속사 전체의 출발점이었다.

적용

바벨탑 사람들의 죄는 거창한 악행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함께 살고, 함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갈망이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을 밀어내는 자리에 놓이는 순간, 선한 열망은 반역이 된다. 우리도 종종 성취와 인정을 통해 “우리 이름을 내려는” 자리로 조용히 옮겨 간다. 오늘 나의 수고와 열심이 향하고 있는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창세기 11장은 흩어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흩으신 자리에서도 아브람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족속에게 이르는 복을 준비하셨고, 오순절에는 갈라진 언어 그대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흩어진 이 세상은, 지상명령을 받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라 나아갈 지도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작은 헌신을 더하는 것 — 그것이 바벨에서 시작되어 계시록의 보좌 앞에서 완성될 이야기에 우리가 동참하는 방법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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