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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강해 —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 그러나 두려움에 넘어진 아브람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며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세기 11:4, 개역한글) 외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러나 결말은 정반대였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세기 11:8, 개역한글). 창세기 12장은 바로 그 흩어짐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번에는 사람이 스스로 이름을 내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한 사람,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인간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다시 시작하신다. 이 장은 그 부르심에 순종해 걸음을 뗀 아브람의 첫걸음과, 그러나 곧이어 두려움 앞에 무너진 그의 연약함을 함께 보여 준다.

제단 앞에서 두 손을 들고 서 있는 아브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삽화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 세겜과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삽화(실제 인물 초상이 아님)

본문 — 창세기 12장 (개역한글)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 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1-20, 개역한글)

문맥 — 흩어짐 뒤에 찾아온 부르심

아브람의 이야기는 창세기 11장 후반부 족보에 이미 예고되어 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세기 11:31, 개역한글) — 데라는 결국 가나안에 이르지 못하고 하란에서 죽었다(창세기 11:32). 아브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곳은 바로 이 하란이었다(12:1, 4). 스데반은 사도행전 설교에서 이 부르심이 실은 하란에 이르기 전, 아직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이미 시작되었다고 증언한다 —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사도행전 7:2-3, 개역한글). 하나님은 우르에서 이미 아브람을 부르셨고, 하란에서 그 부르심을 다시 확인시켜 마침내 걸음을 떼게 하신 것이다.

이라크 남부 우르(Ur)의 지구라트 유적
사진: Amjedha95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아브람이 떠난 갈대아 우르의 지구라트 유적

창세기 11장과 12장은 나란히 놓고 보아야 그 대조가 선명해진다. 바벨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내려 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셨다(11:4, 8-9). 반면 아브람에게는 정반대의 말씀이 임한다 —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창세기 12:1-2, 개역한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이름을 내려다 흩어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떠나 보내사 오히려 그 이름을 크게 하시고,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흘려보내겠다고 약속하신다(12:3). 바벨의 실패가 아브람의 부르심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터키 하란(Harran)의 전통 벌집형 가옥 마을
사진: Dosseman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아브람의 가족이 정착했던 하란(현 튀르키예 샨르우르파 인근)의 전통 가옥

강해

1. 부르심과 복의 언약 (12:1-3)

하나님의 명령은 세 겹으로 떠나라 하신다 — 본토, 친척, 아비 집(12:1). 히브리서 기자는 이 순종을 믿음의 정의로 삼는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브리서 11:8, 개역한글). 아브람은 목적지를 몰랐다. 그가 붙든 것은 지도가 아니라 말씀이었다.

그 말씀에는 약속이 뒤따른다 — 큰 민족, 복, 창대한 이름, 그리고 복의 근원(12:2). 이 약속은 12장에 머물지 않는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창세기 15:17, 개역한글) 이 약속을 정식 언약으로 세우시고,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세기 15:18, 개역한글) 하신다. 창세기 17장에서는 할례를 그 언약의 표징으로 주시며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창세기 17:7, 개역한글) 못 박으신다. 약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지 않고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더 확고하게 재확인된다.

가장 놀라운 절은 3절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 12:3, 개역한글). 바울은 이 절을 그저 옛 이야기로 읽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복음이라 불렀다 —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갈라디아서 3:8, 개역한글). 한 사람에게 주신 약속이 모든 족속을 향한 복음의 씨앗이 된 것이다.

성경에 언급된 고대 근동 지역 고지도
사진: 미시간대학교 디지털화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 성경에 언급된 나라들을 표시한 고지도(우르·가나안·애굽을 포함한 고대 근동)

2. 순종의 걸음, 그리고 제단 (12:4-9)

4절은 짧지만 무겁다.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창세기 12:4, 개역한글). 인생의 새 출발을 기대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갔다. 아내 사래, 조카 롯, 하란에서 모은 소유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12:5).

가나안에 들어선 아브람이 처음 멈춘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창세기 12:6, 개역한글)였다.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세기 12:7, 개역한글) 하시니, 아브람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다.

테레빈나무 고목
사진: Davidbena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창세기 12:6의 히브리어 원어(엘론)를 개역한글은 “상수리나무”로, 다른 역본은 흔히 “테레빈나무”로 옮긴다(생물학적으로 다른 수종이나, 두 나무 모두 가나안 지역에서 큰 그늘을 드리우는 신성한 이정표 나무로 여겨졌다)

제단은 아브람의 첫 응답이었다 — 말씀을 들은 자리에서 그는 정착이 아니라 예배부터 드렸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다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세기 12:8, 개역한글)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다(12:9).

이 두 지명, 세겜과 벧엘은 창세기 안에서 다시 등장한다. 훗날 야곱이 벧엘에서 잠들어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거의 같은 말씀을 주신다 —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세기 28:13-14, 개역한글). 그리고 야곱이 다시 벧엘로 돌아와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창세기 35:7, 개역한글) 할 때, 그가 이방 신상을 묻은 곳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창세기 35:4, 개역한글)였다. 할아버지가 처음 제단을 쌓은 자리를 손자가 다시 밟는다 — 언약은 한 세대의 사건이 아니라 대를 잇는 약속이다.

네게브 사막 풍경
사진: Rosewoman · CC BY 2.0 · 출처 Wikimedia Commons — 아브람이 지나간 네게브(남방) 사막 지대

3. 기근과 두려움 — 애굽에서 넘어진 아브람 (12:10-20)

그러나 9절 이후 이야기는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창세기 12:10, 개역한글). 제단을 쌓던 사람이 이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는 아내 사래에게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창세기 12:11-13, 개역한글) 부탁한다. 사래를 잃을까 봐가 아니라, 자기 목숨을 지키려는 계산이었다.

이집트 나일강 풍경
사진: Menna.Hassan100 · CC BY-SA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 기근을 피해 아브람이 내려간 애굽의 나일강

결국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들어갔고, 아브람은 그 대가로 양과 소, 노비와 약대를 얻었다(12:14-16).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세기 12:17, 개역한글), 진실이 드러나자 바로는 오히려 아브람을 책망하며 그들을 돌려보낸다(12:18-20). 언약 백성이 아니라 이방 왕이 옳은 자리에 선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똑같은 거짓말을 반복하고, 스스로 이렇게 밝힌다 —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창세기 20:13, 개역한글). 즉 이것은 한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고향을 떠날 때부터 정해 둔 습관이었다. 한 세대 뒤에는 아들 이삭도 그랄에서 리브가를 누이라 속인다(창세기 26:7). 세 번의 반복은 이것이 아브라함 부자에게 뿌리 깊었던 두려움이었음을 보여 준다.

더 놀라운 것은, 창세기 20장의 사건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 15:6, 개역한글) 하신 이후, 심지어 할례 언약을 받은 뒤에도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에 대해 바울은 훗날 이렇게 쓴다 —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로마서 4:19-20, 개역한글). 아브람의 믿음은 12장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실패와 회복을 거치며 자라간 믿음이었다.

주제 — 창세기 12장이 성경 전체에서 갖는 의미

창세기 12장은 두 가지를 동시에 증언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다. 아브람이 거짓말하고 두려워해도, 언약은 사람의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 여호와께서 직접 개입하여 사래를 지키셨다(12:17). 다른 하나는 그 언약이 향하는 방향이다. 땅의 모든 족속(12:3)을 향한 약속은 예수님이 친히 확인하신 이야기였다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한복음 8:56, 개역한글). 아브람에게 주신 복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를 향해 가는 이야기였다.

이 약속의 언어는 신약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하신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개역한글).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 12:3, 개역한글)는 약속과 마태복음 28장의 모든 족속을 향한 명령은 같은 성경 이야기의 시작과 절정을 이루는 언어다 — 한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이 결국 모든 족속에게 이르신다.

적용

첫째,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목적지를 다 알 필요는 없다.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히브리서 11:8, 개역한글)다. 오늘 우리도 모든 것이 확실해진 뒤에야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들고 첫걸음을 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다.

둘째, 낯선 자리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정착이 아니라 예배다. 아브람은 세겜에 이르자마자, 벧엘에 이르자마자 제단부터 쌓았다(12:7-8). 우리의 새로운 자리마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예배의 자리다.

셋째, 믿음의 사람도 두려움 앞에서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연약함보다 크다. 아브람의 거짓말도 언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실패했을 때 자책에 머물지 말고, 아브람처럼 다시 믿음으로 돌아서야 한다.

넷째, 땅의 모든 족속을 향한 복은 오늘도 지상명령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브람 한 사람에게 임했던 부르심이 결국 모든 족속을 향한 제자 삼음의 명령으로 확장되었듯, 우리도 그 복을 흘려보내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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