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낯선 히브리어 달 이름이나 신비로운 절기 목록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유대력을 처음 언급하는 자리는 달력 계산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시간을 친히 정하셨다는 선언입니다.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의 한 해를 일곱 절기로 짜 놓으신 여호와의 시간표이며, 신약은 이 절기들이 결국 한 분을 가리키는 그림자였다고 말합니다. 유대력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예비하셨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 이 글의 성경 인용은 모두 개역한글판(1961, 공개도메인)을 따릅니다.

레위기 23장 — 여호와께서 정하신 시간표
레위기 23장은 매주의 안식일을 먼저 세운 뒤, 한 해의 절기들을 선포합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23:3-4, 개역한글)
주목할 순서가 있습니다.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매년 돌아오는 “여호와의 절기”가 이어집니다. 하루의 리듬과 한 해의 리듬이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날짜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러하니라”고 선포하신 시간표를 따라 살았을 뿐입니다.
유대력은 어떻게 짜여 있었나
유대력의 첫 달은 출애굽 사건과 함께 정해졌습니다.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출애굽기 12:2, 개역한글)
여호와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그 달을 종교력의 첫째 달, 곧 “정월”로 삼으셨습니다. 모세오경은 이 달을 대개 “정월”이라는 순서로 부르지만, 고유한 이름으로 부를 때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출애굽기 13:4, 개역한글). 아빕은 보리 이삭이 패는 봄철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훗날 널리 알려진 “니산월”과는 다른, 더 오래된 이름입니다. 레위기 23장에서도 유월절은 “정월 십사일”(23:5)로,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모두 “칠월”(23:24, 27, 34)로, 순서를 따라 표기됩니다.
니산·시완·엘룰·기슬르·데벳·아달처럼 바벨론에서 유래한 달 이름 중 상당수는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거친 뒤 성경에 등장합니다(느헤미야 1:1, 2:1, 6:15, 에스더 2:16, 3:7, 8:9 등). 다만 이야르·티슈리처럼 성경 본문에는 전혀 나오지 않고 훗날 랍비 전통 안에서 굳어진 이름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의 뼈대(정월부터 시작해 절기를 세는 순서)는 출애굽 때부터 변함이 없었지만, 그 달을 부르는 이름은 아빕에서 니산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바뀌어 온 것입니다.
또한 유대력은 달의 삭망을 따르는 태음력이면서도, 절기가 계절(특히 곡식 추수)과 어긋나지 않도록 몇 해에 한 번씩 윤달을 두어 태양의 한 해에 맞추는 태음태양력입니다. 유월절이 언제나 보리를 거둘 봄철에, 초막절이 언제나 모든 소산을 거둔 가을철에 돌아오도록 설계된 셈입니다. 이 조정 자체가 절기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유대력은 단순한 날짜 계산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이스라엘의 농사 주기를 한데 엮어 기억하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일곱 절기,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담은 달력
레위기 23장은 안식일 다음으로 일곱 절기를 순서대로 선포합니다. 이 절기들은 크게 봄철(정월)의 세 절기와 가을철(칠월)의 세 절기, 그리고 그 사이 오십 일 뒤에 오는 한 절기로 나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 — 구원의 시작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 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레위기 23:5-6, 개역한글). 유월절은 죽음의 심판이 어린양의 피 바른 집을 “넘어간” 밤(출 12장)을 기념하고, 곧바로 이어지는 무교절은 누룩 없는 떡을 먹으며 급히 애굽을 떠난 그날을 기억합니다. 두 절기는 사실상 하나로 이어진 구원 사건의 시작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초실절 — 첫 열매를 드림
“안식일 이튿날에” 그 해 처음 벤 곡식 한 단을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 흔들어 드리는 절기입니다(레위기 23:10-11, 개역한글).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23:14, 개역한글). 추수할 곡식을 다 거두기도 전에, 그 첫 열매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드리는 절기입니다.

칠칠절(오순절) — 첫 열매부터 오십 일
초실절, 곧 첫 이삭단을 흔들어 드린 그 날부터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레위기 23:15-16, 개역한글) 드리는 절기입니다. 일곱 주(칠칠)를 센다고 하여 칠칠절, 오십 일째라 하여 오순절이라 불립니다. 보리의 첫 이삭으로 시작해 밀 추수를 마칠 즈음 새 소제를 드리는 절기로, 한 해의 첫 수확 전체에 대한 감사가 이 오십 일 안에 담겨 있습니다.

나팔절과 속죄일 — 돌이킴을 준비함
칠월, 곧 가을 절기의 문을 여는 나팔절은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레위기 23:24, 개역한글)입니다. 그리고 열흘 뒤,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23:27, 개역한글) 라는 말씀대로, 한 해 중 가장 엄숙한 금식과 회개의 날을 지킵니다. 이 날에 대제사장은 한 해에 오직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을 위해 속죄했습니다.

초막절 — 광야를 기억하며 거두어들임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동안 지킬 것이라”(레위기 23:34, 개역한글). 한 해의 모든 소산을 거두어들인 뒤, 이스라엘 백성은 칠 일 동안 나뭇가지로 지은 초막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23:43, 개역한글) — 풍성한 수확의 기쁨 한가운데서도, 광야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는 절기입니다.


그림자에서 실체로 —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절기
신약은 이 절기들을 폐기된 옛 규례로 남겨 두지 않고, 그 절기들이 가리켜 온 실체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서 2:16-17, 개역한글)

절기와 안식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들이 가리키는 “몸” 곧 그리스도가 목적이었다는 선언입니다. 이 틀을 따라 레위기 23장의 절기들을 신약과 나란히 놓으면,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한 이야기를 준비해 오셨음이 드러납니다.
- 유월절 → 그리스도의 죽음.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린도전서 5:7, 개역한글). 문 인방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가 심판을 넘어가게 했듯, 그리스도의 피가 심판에서 우리를 건집니다.
- 초실절 → 그리스도의 부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개역한글). 그 해 첫 이삭단을 드리던 날처럼, 그리스도는 장차 있을 부활의 첫 열매로 살아나셨습니다.
- 오순절 → 성령 강림.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사도행전 2:1, 개역한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첫 수확에 감사하던 절기의 그 날, 하나님은 교회에 새로운 선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 속죄일 → 그리스도의 단번의 속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 개역한글). 해마다 되풀이해야 했던 대제사장의 속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반복할 필요 없는 단번의 속죄로 완성되었습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14, 개역한글).
- 초막절 →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 초막절 기간 중이었던 그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한복음 7:37, 개역한글)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목마른 백성을 기억하던 절기의 절정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그 목마름을 채우실 분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렇다면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유대력의 절기를 지켜야 할까요? 골로새서 2:16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합니다.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키고 안 지키고를 두고 서로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던 자리에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절기의 규례 자체가 아니라, 그 절기들이 한결같이 가리켰던 분입니다.
그러나 유대력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손으로 날짜를 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선포하신 시간표를 따라 살았듯, 오늘 우리의 하루와 한 주와 한 해도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유월절이 가리킨 대속을 매일 기억하고, 초실절이 가리킨 부활의 소망으로 살고, 오순절이 가리킨 성령을 따라 걷고, 속죄일이 가리킨 단번의 속죄 위에 안식하고, 초막절이 가리킨 생수 되신 주님께 날마다 나아가는 것 — 그것이 유대력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초청입니다.
주님, 옛적 이스라엘의 절기 하나하나에 주님을 예비해 두신 그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유월절 양이신 주님의 희생과, 첫 열매 되신 주님의 부활과, 우리 안에 오신 성령과, 단번에 이루신 속죄와, 목마른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도 붙듭니다.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이신 주님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