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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을 신앙의 눈으로 — 전쟁의 실록 위에 겹쳐 읽는 순교와 용서

해마다 6월이 오면 우리는 한 전쟁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전쟁을 ‘무엇으로’ 기억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강규형 외 4인 공저, 기파랑)은 그 전쟁의 시작과 책임을 또렷이 가리키려는 역사 교양서입니다. 이 글은 그 책을 정치적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실록(實錄)’ 위에 한국 교회가 함께 통과한 또 하나의 이야기—순교와 용서의 복음—을 겹쳐 읽어 보려는 것입니다.

6·25 전쟁 당시 피난길에 오른 남한 주민들
6·25 전쟁의 한복판,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 전쟁의 통계 뒤에는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의 견딤이 있었습니다. 사진: U.S. Defense Department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서 해안 방벽을 오르는 유엔군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해안 방벽을 오르는 유엔군—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결정적 작전이었습니다. 사진: Unknown Marine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강규형(명지대 교수)을 비롯해 김용삼·남정욱·정경희·주익종 등 다섯 사람이 함께 쓴 공저입니다. 펴낸 곳은 도서출판 기파랑이며, 2019년 초판이 나온 뒤 개정판으로 이어졌습니다. 본문은 약 136쪽, 모두 26개의 짧은 꼭지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은 다섯 쪽 안팎의 간결한 서술에 기록사진과 자료·도표를 곁들였습니다. 청소년과 일반 독자가 6·25의 큰 줄기를 빠르게 잡도록 설계된 교양서입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둘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보수 성향의 현대사 연구자·필자들로, 책 전체에는 특정한 역사 해석의 관점이 또렷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독자는 이 책에서 널리 입증된 ‘사실’과 저자들의 ‘해석’을 분별하며 읽는 것이 정직합니다. 이 글 역시 그 분별의 자세를 지키려 합니다.

1950년 12월 흥남 — 철수 작전 후 항만 시설이 폭파되는 장면
1950년 12월 24일 흥남. 피란민과 병력을 모두 실어 낸 뒤 항만 시설이 폭파되고 있습니다—‘흥남 철수’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사진: Unknown author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책의 한 문장 — “6·25는 기획된 남침이었다”

책의 가장 굵은 주장은 제목 그대로입니다. 6·25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마오쩌둥)의 사전 승인·지원을 받아 치밀하게 준비한 남침이었다는 것입니다. 책의 첫 두 꼭지가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스크바로 간 까닭’과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기획한 전쟁’을 다룹니다.

이 핵심 사실은 특정 진영의 주장이 아니라 오늘날 학계의 정설입니다. 소련이 붕괴한 뒤 공개된 옛 소련 문서고 자료—스탈린과 북한 주재 소련대사 슈티코프, 그리고 김일성 사이의 교신 기록—는 1950년 6월 25일의 전쟁이 사전에 공모된 남침임을 분명히 입증했고, 이로써 40여 년간 이어지던 ‘전쟁 기원’ 논쟁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스탈린은 1950년 초 마오쩌둥의 동의를 조건으로 침공 계획을 승인했고, 무기와 군사 고문을 지원했습니다.

전쟁은 초기 남침 이후 낙동강 방어선의 사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압록강을 향한 진격, 그해 11월 중공군 개입과 1·4후퇴를 거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멈춰 섰습니다. 그 사이 군인은 어림잡아 100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고, 민간인 희생은 추정에 따라 160만에서 300만 명에 이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한국전쟁의 사망자를 최소 250만 명으로 보며, 그 절반 이상이 민간인이었다고 적습니다. 책은 인민재판과 양민 학살, 장진호의 혹한, 흥남 철수의 절박함을 지나 마지막 장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로 귀결됩니다. 이 ‘자유의 값’이라는 메시지는, 신앙인이 받아들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 평양 대부흥의 현장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평양 교회의 심장이자, 1907년 평양 대부흥이 타오른 자리입니다. 사진: UnknownUnknown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역사책이 멈춘 자리 — 6·25는 교회를 겨눈 전쟁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이 거의 다루지 않는 또 하나의 전선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의 수난입니다. 공산주의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명제 위에 선 국가 무신론을 표방했고, 북한 정권은 기독교를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래서 6·25의 비극은 군사적·정치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신앙을 겨눈 박해이기도 했습니다.

2025년 4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6·25전쟁 중 희생된 종교인을 공식적으로 600명(개신교 533명, 천주교 64명, 대종교 3명)으로 확인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1950년 9월 인민군 후퇴기에 학살되었으며 다수가 북으로 끌려간 납북 피해자였음을 밝혔습니다. 이 밖에도 순교한 목회자 수를 더 높게 추산하는 교계의 통계들이 있으나, 집계 기준이 저마다 달라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박해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신앙 자체를 겨눈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가슴 아픈 것은 ‘잃어버린 교회’입니다. 평양은 1907년 평양 대부흥(장대현교회 길선주 장로의 공개 회개가 그 불씨였습니다)을 거치며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만큼 한국 기독교의 심장이었습니다. 해방 전 북녘 땅에는 수천 개의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6·25와 잇따른 숙청을 거치며 북한의 조직 교회는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1944년 일제하에서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산정현교회(평양)는, 그 이전과 이후로 이어진 평양 교회 수난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새벽빛 속 언덕 위 나무 십자가를 그린 개념 삽화
순교와 용서를 형상화한 개념 삽화. 미움의 악순환은 오직 십자가의 사랑으로 끊어집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순교와 용서 — 손양원 목사가 보여 준 복음

이 전쟁이 교회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를 가장 또렷이 보여 주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1902~1950)입니다. 그는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친히 끌어안고 섬긴 목회자였습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먼저 깊은 슬픔이 있습니다.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 때, 좌익 세력에 의해 그의 두 아들 동인·동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습니다(이는 6·25 발발 이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가해자 안재선이 붙잡혀 처형될 처지에 놓이자, 그를 용서하고 구명하여 마침내 자신의 양아들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국 교회사는 이 일을 ‘사랑의 원자탄’이라 부릅니다. 원수를 향한 그 사랑은 그가 지어낸 감정이 아니라, 한 말씀에 붙들린 순종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태복음 5:44 (개역한글)

그리고 2년 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28일, 손양원 목사 자신도 미처 피하지 않고 환자들 곁에 남았다가 후퇴하던 공산군에게 총살당해 순교했습니다. 두 아들을 잃고, 그 원수를 아들로 품고, 끝내 자신마저 같은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그의 생애는 복음이 미움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 내는지를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로마서 12:21 (개역한글)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유엔군 사령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이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춘’ 것입니다. 사진: U.S. Navy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전쟁의 기록 위에 십자가를 겹쳐 읽다 — 비판적 평가

그렇다면 이 책의 값어치는 무엇일까요.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은 전쟁의 ‘시작과 책임’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명료하게 정리해 줍니다. 풍부한 기록사진과 짧은 호흡의 구성 덕분에, 6·25를 낯설어하는 다음 세대가 큰 줄기를 잡기에 좋은 입문서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는, 평화를 당연히 여기기 쉬운 우리를 정직하게 일깨웁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세속의 정치·역사서입니다. 전쟁의 영적 차원—교회의 순교, 원수를 향한 용서, 분단을 넘는 화해—은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이승만에 대한 평가나 역사 교과서 비판처럼 여전히 논쟁 중인 영역에서는 저자들의 특정한 시각이 강하게 묻어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이 책에서 입증된 사실은 감사히 취하되, 정치적 단정은 분별하며 읽어야 합니다. 역사책이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에서 멈출 때, 복음은 “그 미움을 무엇으로 이길 것인가”라는 더 깊은 질문을 우리 앞에 둡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마태복음 5:10 (개역한글)

성경은 환난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의 한복판에서도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개역한글)는 말씀은, 6·25의 순교자들이 걸어간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언합니다.

철조망 너머 새벽 들판이 펼쳐진 화해를 그린 개념 삽화
분단을 넘는 화해의 복음을 형상화한 개념 삽화. 녹슨 철조망 너머에도 복음의 빛은 흐를 수 있습니다.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지상명령의 눈으로 — 분단을 넘어 화해의 복음으로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라 멈춘 전쟁입니다. 정전협정 이후 70여 년, 분단은 여전하고 북녘의 교회는 아직 닫혀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책의 ‘자유’라는 주제는 그리스도인에게 한 걸음 더 깊은 부르심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단지 지켜야 할 체제가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북녘 동포에게 흘려보내야 할 빚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28:19-20 (개역한글)

지상명령은 휴전선 앞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손양원 목사가 원수를 아들로 품었듯, 우리의 부르심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6·25의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방식은, 박해받은 교회를 잊지 않고 기도하며, 분단을 넘어 복음이 흐르기를 구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을 오늘 내 자리에서 사는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요한계시록 2:10 (개역한글)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6·25의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정리하고 싶은 신앙인, 전쟁과 자유의 의미를 자녀·청소년 세대에게 가르치려는 부모와 교사, 그리고 한국 교회가 통과한 수난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려는 성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다만 책에 담긴 정치적 해석은 분별하며 읽고, 그 역사 위에 순교와 용서의 복음을 겹쳐 읽으실 것을 함께 권합니다. 역사는 사실을 가르치지만, 그 사실을 끌어안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분은 오직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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