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교재와 커리큘럼, 정해진 진도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신 장면을 보면, 그 출발점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3:14은 예수님의 제자훈련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한 절로 보여 줍니다. 이 글에서는 이 구절을 성경의 다른 본문과 함께 읽으며 제자훈련의 첫 원리를 다시 배우고, 오늘 그 원리를 살아내는 길을 살펴봅니다.

산에서 부르심: 마가복음 3장이 보여 주는 순서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 초기에 산에 오르사 친히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마가는 그 목적을 분명히 기록합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복음 3:13-15, 개역한글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목적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는 것, 보내어 전도하게 하시려는 것,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영어 역본 WEB과 KJV가 따르는 사본에는 병을 고치는 권세도 함께 나옵니다. 어느 사본을 따르든 마가가 가장 먼저 적은 목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능력도, 보냄받는 사명도 그 다음에 옵니다.

헬라어 본문을 보면 이 순서가 더 선명해집니다. 마가복음 3:14에서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는 메타(meta)이고, 보낸다는 동사는 아포스텔로(apostellō)입니다. 신약이 열두 제자를 부르는 이름인 사도(apostolos)가 바로 이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사도는 먼저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고, 그 다음에 그분이 보내신 사람입니다.
함께 있게 하시고: 제자훈련의 첫 원리
제자도는 행함(doing)보다 먼저 있음(being)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처음 어부들을 부르실 때부터 “나를 따라 오너라”(마가복음 1:17, 개역한글) 하셨습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같은 길 위에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둘씩 보내시기 전에 먼저 곁에 두시고 함께 먹고 걷고 머물며 일상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고(마가복음 1:35), 나병 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습니다(마가복음 1:41). 제자들은 그런 주님 곁에서 배웠고,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교과서입니다.
20세기 복음주의의 고전이 된 로버트 콜먼(Robert E. Coleman)의 《주님의 전도 계획》(The Master Plan of Evangelism, 1963)은 예수님의 제자훈련 방식을 여덟 가지 원리로 정리합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 원리가 Association, 곧 함께함입니다. 콜먼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뒤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셨고, 그것이 훈련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정해진 학교도 교과 과정도 없었고, 제자들을 자기 곁으로 가까이 이끄신 것이 곧 가르침이었다는 것입니다. 콜먼은 이 장의 첫머리에 마태복음 28:20을 걸어 두었습니다. 함께 있음이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을 가르칠지를 먼저 묻지만, 예수님은 누구와 함께 살지로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도는 대개 한 사람의 삶을 가까이에서 나눌 때 전해집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함께 있음의 열매
성경은 마가복음 3:14에서 시작된 훈련이 실제로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를 여러 곳에서 보여 줍니다.
첫째, 보내심과 돌아옴의 리듬입니다. 마가복음 6:7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이제 보냄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6:30에서 사도들은 다시 예수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하고 가르친 일을 보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마가복음 6:31, 개역한글) 하셨습니다. 보내심은 함께 있음을 끝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보냄받았다가 다시 그분 곁으로 돌아옵니다.
둘째, 함께 있던 사람에게는 표가 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뒤,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공회원들은 그들에게 학문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지만, 그들의 담대함을 설명해 준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사도행전 4:13, 개역한글
그날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말했습니다(사도행전 4:8). 그리고 공회원들은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보았습니다(사도행전 4:13). 마가복음 3:14에서 시작된 훈련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열매가 된 것입니다.

셋째, 함께 있음은 승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시며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개역한글)고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14의 함께와 마태복음 28:20의 함께는 헬라어로 같은 전치사 메타(meta)입니다. 처음 제자들을 곁에 두신 주님이 그들을 보내시는 순간에도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제자훈련은 예수님을 흉내 내는 기술이 아니라, 지금도 함께하시는 주님 곁에 머무는 삶입니다.

부르심에서 보내심으로: 순서가 말해 주는 것
본문은 함께 있게 하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같은 구절은 곧이어 그들을 보내어 전도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함께 있음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며, 보내심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분의 삶을 보고 배우고, 그 다음 배운 것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순서가 바뀌면 사역은 메마르기 쉽습니다. 요한복음 15:5에서 예수님이 포도나무와 가지를 들어,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열둘이라는 숫자에도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숫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마태복음 19:28 참고). 제자훈련은 개인의 성장에서 그치지 않고 교회를 세우고 세상으로 복음을 보내는 일로 이어집니다.

오늘 함께 있음을 사는 세 가지 길
그렇다면 강의실 너머에서 예수님의 함께 있음을 어떻게 이어 갈 수 있을까요? 교회가 오래 실천해 온 세 가지 길을 살펴봅니다. 어떤 방식이든 핵심은 교재가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시간입니다.
일대일: 한 사람을 깊이 만나기
일대일 제자양육은 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 말씀을 함께 읽고 삶을 나누며 제자로 세우는 평신도 사역입니다. 두란노의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는 자기중심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 중심의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교재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교재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소그룹과 제자반: 작은 공동체로 곁에 있기
예수님도 열둘이라는 작은 무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서로의 형편을 알 수 있을 만큼 작은 모임은 말씀과 교제와 돌봄을 나누기에 알맞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옥한흠 목사가 1978년 강남은평교회(지금의 사랑의교회)를 개척해 평신도를 제자로 세우는 훈련에 힘썼습니다. 1986년에는 목회자를 위한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CAL세미나)를 시작했고, 이 세미나는 지금도 국제제자훈련원이 열고 있습니다. 제자반과 소그룹은 함께 있음의 원리를 공동체 단위로 살아내는 자리입니다.
삶을 나누는 동행: 일상을 함께 걷기
네비게이토(The Navigators)는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이 1933년 미 해군 수병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암송하며 시작한 사역입니다. 이 단체는 지금도 삶에서 삶으로 전하는 제자훈련(Life-to-Life Discipleship)을 강조합니다. 멘토와 함께 일상을 걸으며 모범을 보고 묻고 따라 하는 가운데 신앙이 전해집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 예수님의 방식을 오늘에 잇는 모습입니다.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 밥을 함께 먹고 길을 함께 걷는 평범한 날들 속에서 제자도는 자랍니다.

이번 주, 한 사람 곁에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완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곁을 내어 주는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대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번 주에 그 사람과 밥 한 끼를 나누고, 마가복음 3장을 함께 읽고, 서로를 위해 짧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먼저 주님 곁에 머무는 시간을 내십시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곁에도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3:14이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는 단순합니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분께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분께 배운 사랑은 다른 사람 곁에 있어 주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 작은 동행의 길을,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함께 걸으십니다.
참고 자료
- YouVersion(bible.com) — 개역한글 마가복음 3장
- BibleHub — Mark 3:14 역본 대조와 헬라어 원어(Strong’s)
- Robert E. Coleman, The Master Plan of Evangelism — Association 장 원문(무료 공개판 PDF)
- 9Marks — The Master Plan of Evangelism 서평(여덟 가지 원리)
- The Navigators — 역사와 Life-to-Life 제자훈련
- 두란노 — 일대일 제자양육 안내
- 사랑의교회 — 교회 연혁(1978년 강남은평교회 개척)
- 주간기독신문 — CAL세미나 40주년 기사(1986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