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은 부르심에 순종해 가나안으로 떠난 아브람이, 그러나 기근 앞에서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 사래를 누이라 속이고 결국 바로에게 쫓겨나듯 나오는 장면으로 끝난다(창세기 12:10-20). 믿음으로 시작한 걸음이 두려움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창세기 13장은 바로 그 실패의 자리에서, 놀랍도록 담담하게 다시 시작된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13:1) — 본문은 아브람의 회개를 따로 서술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어디로 걸어 돌아가는지를 보여 준다. 그는 처음 하나님을 예배했던 자리, 벧엘의 제단으로 되돌아간다.

본문 — 창세기 13장 (개역한글)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13:1-18, 개역한글)
문맥 —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제단의 자리로
창세기 13장의 첫 단어는 “애굽에서 나올새”다.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스스로 내려갔던 애굽에서, 이번에는 바로에게 쫓겨나듯 나온다(12:10, 20). 그런데 그가 돌아간 곳은 단순히 “가나안”이라는 지리적 좌표가 아니다. 본문은 정확히 짚어 말한다 —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13:3-4). 이는 12장에서 이미 나온 그 자리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세기 12:8, 개역한글). 아브람은 실패를 딛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는 처음 예배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 귀환은 창세기 13장 전체의 열쇠다. 두려움에 넘어져 거짓을 말하고 아내를 위험에 내주었던 사람이, 심판이나 정죄의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제단 앞으로 돌아와 다시 예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처음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장된 약속을 주신다(13:14-17). 아브람의 실패가 하나님의 언약을 취소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디모데후서 2:13, 개역한글)는 말씀이 아브람의 이야기 속에서 이미 예시되고 있다. 이 장은 또한 다음 사건들의 발판이 된다 — 14장에서 롯은 전쟁 포로가 되어 아브람에게 구출되고, 18-19장에서는 13장이 이미 예고한 그대로 소돔이 심판을 받는다.

강해
1. 다시 제단으로 — 회복은 걸음에서 시작된다 (13:1-4)
본문은 아브람의 부요함을 먼저 언급한다 —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13:2).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요함은 애굽에서 그의 거짓말 때문에 얻은 것이었다(창세기 12:16). 하나님은 아브람의 연약함까지도 폐하지 않으시고 그 걸음을 이끌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신다. 그가 남방(네게브)에서부터 벧엘까지 올라간 여정(13:1, 3)은 지리적 이동인 동시에 영적 회복의 그림이다. 예배의 자리를 떠났던 사람이,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13:4). 성경은 이 회복을 화려한 감정의 언어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그가 “거기서” — 이전에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 다시 시작했다고 말할 뿐이다.

2. 눈을 들어 택하다 — 갈라서는 아브람과 롯 (13:5-13)
두 사람의 소유가 함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면서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다(13:5-7). 아브람의 반응은 놀랍다. 그는 연장자요 언약의 상속자로서 마땅히 먼저 택할 권리가 있었지만, 오히려 롯에게 먼저 고르게 한다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9). 이는 신약이 가르치는 원리를 앞서 보여 준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 2:3-4, 개역한글). 아브람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의 약속(12:2-3, 7)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붙들 것이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땅 한 조각을 움켜쥐지 않아도 된다.

반면 롯의 선택은 다른 원리로 움직인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이 문장은 창세기의 또 다른 장면을 소리 없이 떠올리게 한다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세기 3:6, 개역한글). 두 본문 모두 “보다”에서 시작해 “택하다”로 이어진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간 선택은 창세기에서 언제나 위험한 길을 낸다. 롯은 물이 넉넉한 땅을 보았을 뿐, 그 땅에 이미 임박한 그림자는 보지 못했다. 본문은 곧바로 그 그림자를 드러낸다 —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13:13).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을 향해 장막을 옮겼고(13:12), 그것은 훗날 그가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건지는 심판의 자리가 된다(창세기 19:24-25). 바울의 말은 이 갈림길을 정확히 요약한다 —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린도후서 5:7, 개역한글).


3. 하나님이 열어 보이신 땅, 다시 세운 언약 (13:14-18)
롯이 떠난 뒤에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 말씀은 롯의 “눈을 들어”(13:10)를 그대로 되받는다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3:14). 같은 동작, 정반대의 근원이다. 롯은 스스로 눈을 들어 좋아 보이는 한 조각을 골랐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눈을 들어 온 땅을 선물로 받는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3:15-16). 이 약속의 언어 — 동서남북, 땅의 티끌 — 는 창세기 안에서 홀로 있지 않다. 훗날 하나님은 벧엘에서 잠든 야곱에게 똑같은 언어로 같은 약속을 되풀이하신다 —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세기 28:13-14, 개역한글). 아브람 한 사람에게 주신 언약이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 그리고 다시 그 자손에게 흘러가는 것을 성경 스스로 이렇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13:17) 명하시는데, 이는 눈으로 보고 끝내는 약속이 아니라 발로 딛고 살아낼 약속임을 뜻한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아브람이 이 땅의 약속을 받고도 결코 그 땅에 정착해 안주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히브리서 11:9-10, 개역한글).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땅을 약속받았지만, 정작 그의 소망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 하나님이 친히 지으실 성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땅을 소유로 움켜쥐지 않고 여전히 장막에 거하는 나그네로 살았다. 롯이 소돔의 견고한 성읍을 향해 장막을 옮긴 것과 정확히 대조된다(13:12).
이 장은 아브람이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옮겨 다시 단을 쌓는 장면으로 끝난다(13:18). 벧엘(13:4)에서 시작해 헤브론(13:18)에서 마무리되는 이 장 전체가, 사실은 두 번의 예배로 앞뒤가 감싸인 이야기다. 아브람의 순례는 언제나 제단에서 제단으로 이어진다.

주제 — 창세기 13장이 성경 전체에서 갖는 의미
창세기 13장은 “보는 것으로 살 것인가, 믿음으로 살 것인가”라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아브람과 롯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 준다.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으로 향했고, 그 선택은 그가 미처 보지 못한 심판으로 이어졌다(13:13, 19:24-25). 아브람은 하나님이 열어 보이신 것을 따라 눈을 들었고, 그 약속은 이삭과 야곱을 거쳐(창세기 28:13-14) 마침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 12:3, 개역한글)는 말씀대로 모든 민족을 향해 흘러간다. 예수님은 훗날 같은 원리를 이렇게 정리하신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개역한글). 무엇을 붙들고 살 것인지 스스로 정하는 삶(롯)과, 하나님이 이미 붙들고 계신 약속 위에 서는 삶(아브람) — 창세기 13장은 그 갈림길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새겨 놓은 본문이다. 그리고 이 장의 끝에서 아브람이 다시 쌓은 제단은, 그 약속을 받은 자의 마땅한 반응이 무엇인지도 함께 보여 준다.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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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다면, 처음 예배했던 자리로 돌아가라.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실패 이후 새로운 전략을 짜지 않았다. 그는 벧엘로, 처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그 자리로 돌아갔다. 우리의 회복도 대개 특별한 곳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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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앞에서 손해를 두려워하지 말라. 아브람은 먼저 택할 권리를 내려놓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은 사람과의 다툼에서 굳이 이기지 않아도 된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립보서 2:4, 개역한글)는 말씀은 관계의 자리에서 실제로 적용해야 할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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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좋아 보이는 것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말라. 롯의 선택 기준은 “물이 넉넉한가”였다. 그 기준에는 “그 땅에 누가 사는가”라는 질문이 빠져 있었다. 지금 눈앞의 풍요나 편리함으로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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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상관없이 신실하시다. 아브람의 거짓말도, 두 사람의 갈등도 하나님의 언약을 흔들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실패했다 해도, 그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창세기 13장이 주는 가장 큰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