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 문이 열리고 노아가 제단을 쌓아 번제를 드리자,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창세기 8:21, 개역한글)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9장은 바로 그 말씀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이다. 심판은 끝났고, 세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장을 찬찬히 읽으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 새로 시작된 것은 세상이지만, 사람은 새로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과 다시 복을 나누시고, 다시는 깨지지 않을 언약을 세우신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9:1, 개역한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다시 주어진 복, 달라진 통치 (9:1-2)
하나님의 첫 마디는 창세기 1장에서 아담에게 하셨던 바로 그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개역한글)
홍수는 창조 자체를 무효로 만들지 않았다. 노아를 통해 하나님은 창조 때 세우신 질서를 다시 선포하신다. 그러나 똑같은 문장 안에 분명한 변화가 있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의 다스림은 별도의 두려움 없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창세기 9:2, 개역한글)

사랑으로 다스리던 관계가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관계로 바뀐 것이다. 이는 사람이 더 이상 창조 때와 같은 순전한 통치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세상은 새로워졌지만 타락은 지워지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 냉정한 현실 위에 그대로 다시 복을 주신다.
고기와 피 —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 (9:3-4)
창세기 1장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음식은 채소와 열매뿐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세기 1:29, 개역한글)
그러나 노아에게는 새로운 허락이 주어진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창세기 9:3-4, 개역한글)
육식이 허락되지만 조건이 붙는다 — 피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 규례는 창세기 9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훗날 레위기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개역한글)
피는 단지 음식의 한 성분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가리킨다. 신명기 12:23도 같은 원리를 반복하고, 사도행전 15:20, 29에서는 예루살렘 공의회가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이 규례를 다시 상기시킨다. 노아 시대에 세워진 이 원칙은 모세의 율법보다 앞서 있었고, 신약 교회에서도 여전히 존중되었다 — 생명은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뜻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 생명의 값 (9:5-7)
피에 대한 규례는 곧바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규례로 이어진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세기 9:5-6, 개역한글)

사람의 피를 흘린 자에게 생명으로 갚게 하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는 것이다. 이 근거는 창세기 1장으로 곧장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개역한글)
타락 이후에도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신약의 야고보서도 같은 논리로 이렇게 경고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야고보서 3:9, 개역한글)
사람을 해치는 것은 곧 그 사람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일이다. 창세기 9:6이 세운 이 원칙 — 생명에는 생명으로 값을 매기신다는 원칙 — 은 훗날 로마서 13:4이 말하는 위정자의 권세(“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로마서 13:4, 개역한글)로 이어지며, 사람의 생명을 다스리시는 이는 결국 하나님 한 분이심을 계속해서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은 이 무거운 말씀을 남기신 뒤에도 다시 한번 복을 명하신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세기 9:7, 개역한글). 심판의 기억이 생생한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여전히 복이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 영원한 언약의 증거 (9:8-17)
이 언약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홍수가 시작되기도 전, 하나님은 이미 노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세기 6:18, 개역한글)
창세기 9장은 바로 그 약속이 공식적으로 세워지는 자리다. 그런데 이 언약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9:9-11, 개역한글)
사람의 순종이나 회개를 조건으로 걸지 않는, 하나님 한 분이 일방적으로 선언하시는 언약이다. 그 증거로 무지개가 주어진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세기 9:13, 16, 개역한글)

무지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성경 다른 곳(예: 하박국 3:9)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활’을 가리키는 데도 쓰이는 단어다. 전쟁의 무기로 쓰이던 활이 구름 속에 걸려 더 이상 땅을 겨누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심판의 도구가 걸려 있는 언약의 증거가 된다는 것 — 이것이 노아 언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노아의 포도원에서 — 구원받은 사람도 다시 넘어진다 (9:18-23)
영원한 언약이 선포된 바로 다음 장면은 뜻밖에도 넘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9:20-23, 개역한글)

이 장면은 창세기 3장과 나란히 놓인다. 경작된 곳(동산/포도원)에서, 무언가를 취한 뒤(선악과/포도주), 벌거벗음과 수치가 뒤따른다는 구조가 똑같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 하나님이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듯(“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개역한글), 노아가 넘어진 뒤에는 그 아들 셈과 야벳이 얼굴을 돌이킨 채 옷으로 아버지를 덮는다. 죄는 드러나지만, 은혜는 언제나 덮는다.
홍수로 온 땅의 죄가 심판을 받았어도, 방주에서 나온 여덟 명 중에도 죄는 그대로 살아 있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사람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언약의 중심에 서 있던 노아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저주와 축복의 예언 — 셈, 함, 야벳 그리고 흩어질 민족들 (9:24-29)
노아는 술이 깬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예언한다.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세기 9:25-27, 개역한글)

본문이 분명히 밝히듯 이 저주는 함이 아니라 “가나안” 한 사람과 그 계열에 국한된다. 함의 다른 아들들까지, 더구나 어떤 인종 전체를 겨냥한 저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본문의 이름으로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예언은 훗날 여호수아 시대, 가나안 족속 일부가 이스라엘 회중을 섬기는 자리로 편입되는 사건으로 성취되어 간다(여호수아 9:27).
반면 셈에게는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특별한 호칭이 주어지고, 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된다. 셈의 족보는 곧이어 창세기 11장에서 아브람에게로 이어지고(“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세기 12:3, 개역한글),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이 예언은 오래전부터 이방 족속이 훗날 셈의 복에 동참하게 될 것을 내다보는 말씀으로 읽혀 왔다 — 바울이 갈라디아서 3:8-9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까지 전해진다고 말하고, 에베소서 2:11-19에서 멀리 있던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져 막힌 담이 헐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백성이 온 땅에 퍼지”고(창세기 9:19, 개역한글), 홍수 후 노아는 삼백오십 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9:28-29). 심판을 통과한 한 가정으로부터, 장차 땅의 모든 족속을 향한 복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이 언약이 갖는 무게 — 아브라함에게로 이어지는 복
노아 언약은 성경에서 딱 한 번 등장하고 잊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백 년 뒤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로 이 언약으로 설명한다.
이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리로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치 않게 하리라 맹세한것 같이 내가 다시는 너를 노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찌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4:9-10, 개역한글)
산이 옮겨져도 이 언약은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아 언약은 모든 생물을 향한 보편적 언약이고, 아브라함 언약(창세기 12, 15, 17장)은 한 사람과 그 후손을 통해 구속사를 열어가는 특별한 언약이다 — 범위는 다르지만 둘 다 사람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해 있다는 점은 같다. 다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이 언약이 심판 자체가 영원히 없다는 뜻은 아니다. 베드로후서 3:5-7은 노아 때의 물 심판과 장차 있을 불 심판을 나란히 세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심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방식과 때를 정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오늘 우리에게 — 언약은 변함없어도 우리는 또 넘어진다
창세기 9장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방주에서 나온 사람도,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받은 사람도 여전히 넘어진다는 것 —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셈의 장막에 야벳이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의 예언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는 데까지 이어진다.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신 그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개역한글)라 하신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지개가 뜬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무지개를 두신 하나님이 신실하시기에 우리는 오늘도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그분이 맡기신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본문의 성경 인용은 공개도메인인 개역한글판(1961)을 따랐다.
참고 자료
- “Genesis 9: The Covenant of the Rainbow”, Bible Hub
- “What are the covenants in the Bible?”, GotQuestions
- “Why did Noah curse Canaan instead of Ham?”, GotQuestions
- “Damn the Curse of Ham: How Genesis 9 Got Twisted into Racist Propaganda”, The Gospel Coalition
- 개역한글판 성경 전문, 위키문헌
- 창세기 9장 개역한글(KRV) 본문, YouVersion Bible.com
- 이사야 54장 개역한글(KRV) 본문, YouVersion Bible.com
- 「대한성서공회 저작권 안내」, bs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