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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녀의 심판 — 요한계시록 17장 강해

요한계시록 17장은 성경에서 가장 강렬한 환상 가운데 하나를 담고 있습니다.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 자주 빛 옷과 금잔, 이마에 기록된 큰 바벨론이라는 이름. 이 그림은 낯설고 무섭지만, 본문 스스로 해석의 열쇠를 쥐여 주는 장이기도 합니다. 천사가 “…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요한계시록 17:7, 개역한글)고 약속하고, 물이 무엇인지(요한계시록 17:15), 열 뿔이 무엇인지(요한계시록 17:12), 여자가 무엇인지(요한계시록 17:18)를 본문 안에서 직접 풀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2024년 손문수 목사가 전한 설교 〈음녀의 심판〉(요한계시록 17:15-18)을 중심에 두고, 요한계시록 17장 전체를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따라 강해한 것입니다. 이 글의 한국어 성경 인용은 모두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화려하던 큰 성의 몰락 — 음녀 바벨론이 받을 심판의 그림
화려하던 큰 성의 몰락 — 음녀 바벨론이 받을 심판의 그림. 삽화 · AI 생성(Codex/ChatGPT)

본문 — 요한계시록 17:15-18 (개역한글)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7:15-18, 개역한글)

문맥 — 두 여인, 두 도시

바벨론의 몰락은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처음 나오는 주제가 아닙니다. 둘째 천사가 이미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요한계시록 14:8, 개역한글)라고 외쳤고, 일곱째 대접이 쏟아질 때 “…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요한계시록 16:19, 개역한글)라고 한 문장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과 요한계시록 18장은 그 선언을 펼쳐 보이는 확대 해설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결말부는 의도된 대칭으로 짜여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1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요한계시록 17:1, 개역한글) 요한에게 와서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요한계시록 17:1, 개역한글)고 말하고 성령으로 그를 광야로 데려갑니다(요한계시록 17:3). 요한계시록 21:9-10에서는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다시 와서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요한계시록 21:9, 개역한글)고 말하고, 이번에는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새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음녀와 신부, 광야와 높은 산,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은 독자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느 여인에게 속했으며, 어느 성의 시민인가.

강해 1 — 음녀의 정체: 세상을 취하게 하는 큰 성 (요한계시록 17:1-6)

요한이 본 여자는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이며(요한계시록 17:1), 그 이마에는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요한계시록 17:5, 개역한글)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음녀라고 부를까요?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음행이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과 유다를 두고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예레미야 3:9, 개역한글)이라고 말했고,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야고보서 4:4, 개역한글)라고 경고했습니다. 음행은 몸의 죄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사랑과 신뢰를 다른 것에 주는 모든 일입니다.

붉은 옷을 입고 금잔을 든 여자가 여러 머리를 가진 검은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중세 사본 삽화
붉은 옷의 여자가 잔을 높이 들고 여러 머리를 가진 짐승 위에 앉아 있다. 그림 속 라틴어 문구는 여자가 짐승 위에 앉은 곳이라는 뜻이다. 파쿤두스 베아투스 사본(1047년), 스페인 국립도서관 소장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그림의 뿌리는 구약의 바벨론 심판 신탁에 있습니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예레미야 51:7, 개역한글). “많은 물 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남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예레미야 51:13, 개역한글). 나훔이 니느웨를 가리켜 “…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나훔 3:4, 개역한글)라고 했던 언어도 겹쳐 있습니다. 많은 물, 금잔, 열방을 취하게 하는 포도주가 모두 요한계시록 17장에 다시 나옵니다. 그래서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요한계시록 17:2, 개역한글)고 합니다.

본문은 이 여자가 한 개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힙니다. 요한계시록 17:18은 이 여자를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풀어 줍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은 그 성이 어떤 곳인지 이어서 보여 줍니다. “…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8:3, 개역한글). 권력과 상업과 사치가 한데 엉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속삭이는 세상, 그것이 큰 성 바벨론입니다. 여자가 입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 금과 보석과 진주(요한계시록 17:4)는 그 세상의 화려한 겉모습이고, 손에 든 금잔의 내용물은 그 속을 드러냅니다. “…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요한계시록 17:4, 개역한글). 그리고 요한계시록 17:6이 정체를 확정합니다. “…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요한계시록 17:6, 개역한글). 화려함 뒤에 순교자의 피가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의 재구성화 — 강가의 부두와 석상, 멀리 계단식 정원이 보이는 성
고대 바벨론의 재구성화(1906년) — 강가에 자리 잡은 부유한 성. 예레미야 51:13은 바벨론을 많은 물 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라고 부른다. 그림: František Kupka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강해 2 — 짐승의 비밀: 일곱 머리와 열 뿔 (요한계시록 17:7-14)

요한이 여자를 보고 크게 기이히 여기자 천사는 여자를 태운 짐승의 비밀부터 풀어 줍니다(요한계시록 17:6-7). 이 짐승은 처음 등장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7:3의 짐승은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습니다. 요한은 앞서 “…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요한계시록 13:1, 개역한글)고 보았는데, 그 짐승의 머리들에도 참람된 이름들이 있었습니다(요한계시록 13:1). 그 짐승에 대해서는 “…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2, 개역한글)고 기록했습니다. 그 용은 “…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요한계시록 12:9, 개역한글)입니다. 음녀는 사탄이 권세를 준 짐승의 등에 앉아 있습니다. 세상의 화려함이 무엇에 올라타 있는지를 성경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짐승을 설명하는 표현은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과 나란히 놓고 보면 뚜렷이 대비됩니다. 하나님은 “…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요한계시록 1:8, 개역한글)고 하시는데, 짐승은 “…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요한계시록 17:8, 개역한글)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이고, 짐승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마침내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이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지만(요한계시록 17:8; 요한계시록 13:8), 새 예루살렘에는 “…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요한계시록 21:27, 개역한글)고 하였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짐승을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다니엘을 그린 흑백 판화
귀스타브 도레, 〈네 짐승에 관한 다니엘의 환상〉(1866년) — 바다에서 큰 짐승 넷이 올라오는 다니엘 7장의 환상. 요한계시록 13장과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과 열 뿔은 이 환상의 언어를 이어받는다. 판화: Gustave Doré · Public domain ·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어서 천사는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요한계시록 17:9, 개역한글)라고 말하고, 그 머리가 또한 일곱 왕이라고 밝힙니다(요한계시록 17:10). 짐승을 나라와 왕으로 푸는 방식은 다니엘서에서 이미 볼 수 있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다니엘 7:17, 개역한글). 요한계시록은 이 왕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두 번이나 같은 결말을 강조합니다. 짐승은 멸망으로 들어갈 자이며(요한계시록 17:8), “…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요한계시록 17:11, 개역한글)고 합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지혜는 연대표를 맞추는 계산보다, 짐승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 끝이 정해져 있음을 아는 데 있습니다.

열 뿔도 다니엘서의 언어입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다니엘 7:24, 개역한글). 요한계시록도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요한계시록 17:12, 개역한글)고 풀어 줍니다. 그들의 권세는 일시 동안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서 바벨론의 심판이 “일시간에” 이르렀다고 거듭 말하는 것과 맞물립니다(요한계시록 18:10, 개역한글; 요한계시록 18:17; 요한계시록 18:19). 열 왕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요한계시록 17:13, 개역한글)고 합니다. 이 한 뜻이 결국 누구의 뜻이었는지는 요한계시록 17:17이 밝혀 줍니다.

그리고 이 장의 중심에는 승리 선언이 박혀 있습니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요한계시록 17:14, 개역한글). 짐승과 열 왕이 아무리 한 뜻으로 뭉쳐도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강해 3 — 음녀의 앉은 물 (요한계시록 17:15)

천사는 상징을 스스로 풀어 줍니다.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요한계시록 17:15, 개역한글). 음녀가 앉은 많은 물은 곧 온 세상 사람들입니다. 미혹은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의 현실성을 실감합니다. 화면과 광고와 알고리즘을 타고 음란과 탐욕의 포도주가 백성과 열국과 방언들에게 흘러들어 갑니다. 성도가 이 미혹을 이기는 길은 바벨론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 끝을 미리 보는 것입니다. 하늘의 음성은 명령합니다.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요한계시록 18:4, 개역한글).

일곱 머리 짐승 위에 앉은 여자가 금잔을 들어 여러 신분의 사람들에게 내미는 목판화, 뒤편에서는 성이 불타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바벨론의 음녀〉(1498년 목판화) — 일곱 머리 짐승 위의 여자가 여러 신분의 사람들에게 금잔을 내밀고, 오른쪽 뒤편에서는 성이 불타고 있다. 판화: Albrecht Dürer · CC0(미국 국립미술관) · 출처 Wikimedia Commons

강해 4 — 자기 편에게 삼켜지는 음녀 (요한계시록 17:16)

요한계시록 17:16은 이 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입니다. 음녀를 파멸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음녀가 타고 있던 바로 그 짐승과 열 뿔입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요한계시록 17:16, 개역한글).

이 장면 역시 성경에 앞선 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행한 예루살렘을 두고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에스겔 16:37, 개역한글). “…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에스겔 16:39, 개역한글).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에스겔 16:41, 개역한글). 음녀가 의지하던 정든 자들이 그를 대적하고, 옷을 벗기고, 불사르는 일은 에스겔 16장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방식이었습니다. 악은 결국 자기 편을 삼킵니다. 죄의 동맹은 사랑이 아니라 이용으로 묶여 있어서, 쓸모가 다하면 서로를 물어뜯습니다. 세상이 주는 화려함에 기대어 사는 인생의 결말이 이 한 절에 그려져 있습니다.

강해 5 —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요한계시록 17:17-18)

그런데 요한계시록 17:17은 이 모든 혼돈 위에 놀라운 문장을 얹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요한계시록 17:17, 개역한글). 열 왕이 “한 뜻을 가지고”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고 했는데(요한계시록 17:13, 개역한글), 그 한 뜻을 이루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에스겔 16:37에서 정든 자들을 모아 대적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던 것과 같습니다. 짐승과 열 뿔의 배신조차 하나님의 주권 밖에 있지 않습니다. 악이 악을 삼키는 그 순간에도 역사의 고삐는 보좌에 계신 분의 손에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박해받는 교회에게 주는 위로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해도, 이루어지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장의 마지막 절은 여자가 누구인지 다시 못 박습니다.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7:18, 개역한글).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듯 보이던 그 성이 일시간에 무너지고, 하늘은 노래합니다. “… 할렐루야 …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요한계시록 19:1-2, 개역한글).

존 마틴의 판화 〈바벨론의 함락〉 — 번개 치는 하늘 아래 무너지는 큰 성과 피난하는 사람들
존 마틴, 〈바벨론의 함락〉 —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는 역사 장면을 그린 1831년 메조틴트(1819년 자신의 그림을 따라 제작). 요한계시록 17장과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성의 이름으로 마지막 심판을 말한다. 판화: John Martin (Wellcome Collection) · CC BY 4.0 · 출처 Wikimedia Commons

주제 — 바벨론에서 나와 어린 양에게로

요한계시록 17장은 미래 일정표를 채우라고 주신 본문이 아니라, 지금 어느 편에 설지를 결단하라고 주신 본문입니다. 본문이 스스로 밝혀 준 것은 분명합니다. 음녀는 온 세상을 미혹하는 큰 성이고(요한계시록 17:15; 요한계시록 17:18), 그가 탄 짐승과 열 왕의 권세는 일시 동안이며(요한계시록 17:12), 그 끝은 자멸이고(요한계시록 17:16), 역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요한계시록 17:17), 최후 승리는 어린 양의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7:14).

두 여인의 옷도 대조됩니다. 음녀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에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지만(요한계시록 17:4), 어린 양의 아내에게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요한계시록 19:8, 개역한글)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자리는 음녀의 잔이 아니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이며, 성도의 힘은 내 결심이 아니라 “…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요한계시록 17:14, 개역한글)라는 약속에 있습니다.

적용 — 취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기

  • 내 일상에서 음행의 포도주(요한계시록 17:2)가 흘러드는 통로는 어디인가? 화면, 소비, 관계, 야망 앞에서 나는 깨어 있는가, 취해 있는가?
  • 바벨론의 화려함(요한계시록 17:4)이 부러워 보일 때, 나는 그 끝(요한계시록 17:16)을 함께 보는가?
  • 짐승처럼 강해 보이는 권세 앞에서, 그 권세가 일시 동안이며 어린 양이 이기신다는 사실(요한계시록 17:12-14)을 기억하는가?
  •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요한계시록 18:4, 개역한글)라는 부르심 앞에서 지금 내가 구체적으로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혼란스러운 시대의 뉴스 앞에서, 나는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역사를 이끄시는 주권(요한계시록 17:17)을 신뢰하며 사는가?

설교 영상

요한계시록 강해(계 17:15-18), 음녀의 심판, 손문수 목사, 지상명령, 24.03.20.수 (YouTube)
요한계시록 강해(계 17:15-18), 음녀의 심판, 손문수 목사, 24.03.22. 금 (YouTube)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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