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신실한 순종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요?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디모데후서 4:6, 개역한글). 곁을 지키던 사람들도 흩어졌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디모데후서 4:11, 개역한글). 그 마지막 순간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남긴 당부 가운데 하나가 디모데후서 2:2입니다. 이 한 절에는 복음을 다음 사람에게 맡기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하는 제자훈련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본문 — 디모데후서 2:1-2 (개역한글)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1-2, 개역한글)
디모데후서 2:2의 명령은 디모데후서 2:1 위에 서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디모데후서 2:1, 개역한글)라고 말한 뒤에 맡기라고 합니다. 제자를 세우는 일은 기술이나 프로그램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먼저 붙들린 사람이 그 은혜를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문맥 — 홀로 남은 바울이 붙든 것
디모데후서 4장은 바울이 처한 형편을 숨기지 않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고, 다른 동역자들은 각자의 사역지로 흩어졌습니다(디모데후서 4:10). 바울은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디모데후서 4:16, 개역한글)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디모데후서 4:17, 개역한글).
사람들은 떠났지만 주님은 곁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관심은 끝까지 말씀이 이방인에게 전해지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말씀이 계속 전해질 길을 디모데에게 맡깁니다. 디모데후서 2:2는 감옥에 갇힌 사도의 체념이 아니라, 말씀이 멈추지 않게 하려는 마지막 위탁입니다.

디모데는 어떻게 디모데가 되었는가
디모데도 누군가에게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사도행전 16:1, 개역한글)라고 소개하고, 이어서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사도행전 16:2, 개역한글)라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디모데의 믿음은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이어져 오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디모데후서 1:5, 개역한글)라고 씁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디모데후서 3:15, 개역한글)라고 상기시킵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말씀이 먼저 흘렀고, 바울은 그 위에 함께 걷는 삶을 더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린도전서 4:17, 개역한글)이라고 부르고, 빌립보 교회에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립보서 2:22, 개역한글)고 증언합니다. 디모데후서 2:2를 받은 디모데 자신이 이미 맡겨진 말씀으로 세워진 열매였습니다.
한 절 안에 담긴 네 세대
디모데후서 2:2를 천천히 읽으면 네 세대가 보입니다. 바울(1세대)이 디모데(2세대)에게 말씀을 전했고,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들(3세대)에게 맡기며,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4세대)을 가르칩니다. 한 문장이 네 세대를 품고 있습니다.
맡길 내용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디모데후서 2:2, 개역한글)이라는 말씀이 가리키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은밀히 받은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쳐진 같은 복음입니다. 바울은 앞서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디모데후서 1:13, 개역한글)라고 당부했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내용은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재생산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받은 것을 변하지 않게 전하는 일입니다.
부탁하라 — 맡겨진 보물
부탁하라로 옮겨진 헬라어는 παράθου(파라투)로, 동사 παρατίθημι(파라티테미)의 명령형입니다. 신약에서 이 동사는 음식을 사람들 앞에 차려 놓는다는 뜻으로 쓰이고(누가복음 9:16; 11:6), 소중한 것을 믿을 만한 이에게 맡긴다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개역한글)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사도행전 20:32, 개역한글)라고 말했습니다. 같은 동사가 쓰인 이 구절들에서, 맡기는 사람은 가장 귀한 것을 내어 줍니다.
같은 어근의 명사 παραθήκη(파라테케)는 맡긴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번이나 그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디모데전서 6:20, 개역한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디모데후서 1:14, 개역한글). 개역한글은 이 구절들을 모두 부탁으로 옮겨, 한국어 독자도 그 연결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은 지켜야 할 보물이면서 다시 맡겨야 할 보물입니다. 지키기만 하고 맡기지 않으면 땅에 묻어 둔 보물이 되고, 맡기기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 내용이 변합니다. 디모데후서 1:14의 지키라와 디모데후서 2:2의 부탁하라는 한 쌍입니다. 예수님도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12:48, 개역한글)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된 사람들 — 무엇을 보고 고르는가
맡길 대상은 충성된 사람들(πιστοῖς ἀνθρώποις)입니다. 여기서 쓰인 형용사 πιστός(피스토스)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2, 개역한글)고 쓸 때의 충성과 같은 낱말입니다. 맡은 자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화려한 재능이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신실한 아들(고린도전서 4:17)이라 부를 때도 같은 낱말이 쓰였습니다. 디모데에게 신실한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는 바울은, 디모데 안에서 그 신실함을 이미 보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 기준은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디모데후서 2:2, 개역한글)는 것입니다.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24는 주의 종을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디모데후서 2:24, 개역한글)라고 묘사합니다. 온유함과 인내 속에서 받은 말씀을 다른 이에게 풀어 주는 사람입니다. 원문(ἱκανοὶ ἔσονται)은 미래형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교사를 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실한 사람에게 말씀을 맡기면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 간다는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덧셈과 곱셈 — 느리게 시작해 멀리 가는 길
재생산이 왜 중요한지는 간단한 가정으로 계산해 보면 보입니다. 아래 숫자는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계산이며, 실제 사역의 통계가 아닙니다.
- 덧셈: 한 사람이 날마다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1년에 365명, 10년이면 3,650명, 20년이면 7,300명입니다.
- 곱셈: 한 사람이 1년 동안 한 사람을 깊이 세우고, 이듬해부터 두 사람이 각각 한 사람씩 세운다면 사람 수는 해마다 두 배가 됩니다. 10년 뒤에는 1,024명, 20년 뒤에는 1,048,576명입니다.
이 계산에서 눈여겨볼 점은 처음 열두 해 동안은 덧셈이 더 많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곱셈은 12년째까지 4,096명으로 덧셈의 4,380명에 못 미치다가, 13년째 8,192명으로 앞지릅니다. 재생산은 처음에는 느리고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물론 사람은 숫자가 아니고, 제자훈련은 이렇게 기계적으로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이 계산이 보여 주는 것은 방향입니다.
성경은 이 원리가 실제로 일어난 장면을 기록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사도행전 19:9, 개역한글) 가르쳤고,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사도행전 19:10, 개역한글)고 사도행전은 증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과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고,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1:6-7). 그리고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데살로니가전서 1:8, 개역한글)라고 바울은 기뻐합니다.
삶으로 전수하는 제자훈련
바울이 디모데에게 맡긴 것은 지식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디모데후서 3:10, 개역한글) 자신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디모데후서 3:11, 개역한글)라고 말합니다. 그 고난의 목록에는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이 들어 있습니다. 루스드라는 디모데의 고향입니다(사도행전 16:1). 디모데는 가르침과 함께 그 가르침대로 고난을 견디는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전서 11:1, 개역한글)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실 때 먼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마가복음 3:14, 개역한글) 하셨습니다(마가복음 3:14, 제자훈련의 첫 원리 참고). 함께 있음이 보내심보다 앞섭니다.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누가복음 6:40, 개역한글)는 말씀처럼, 제자는 선생에게서 들은 것만이 아니라 본 것을 닮아 갑니다.

현대에도 이 원리를 붙든 사례가 있습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공식 역사에 따르면, 1933년 도슨 트로트맨(Dawson Trotman)은 미 해군 수병 레스 스펜서(Les Spencer)와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말씀을 암송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펜서의 동료 수병이 변화의 비결을 묻자 스펜서는 그를 트로트맨에게 데려가 자신이 배운 것을 가르쳐 달라고 했고, 트로트맨은 스펜서에게 직접 가르치라고 답했습니다. 그 뒤 그들이 탄 전함 웨스트버지니아호에서만 125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며 믿음을 나누게 되었고,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는 세계 곳곳의 함정과 기지에서 수천 명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말씀을 배우고 있었다고 이 단체는 기록합니다. 그들은 이 일을 디모데후서 2:2의 비전으로 설명합니다.
실천 — 오늘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기
1. 먼저 은혜 안에서 강해지십시오
디모데후서 2:2는 디모데후서 2:1 뒤에 옵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배우고 은혜 안에 머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디모데후서 3:14, 개역한글)라는 말씀처럼, 나에게 말씀을 맡겨 준 사람에게 계속 배우십시오.
2. 신실한 한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찾으십시오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신 뒤에 열둘을 택하셨습니다(누가복음 6:12-13). 가장 눈에 띄는 사람보다 맡겨진 것을 성실히 지키는 사람을 찾으십시오(고린도전서 4:2). 시간을 내어 함께할 수 있는지, 배우려는 마음이 있는지도 함께 살피십시오.
3. 함께 있으며 삶을 보여 주십시오
함께 성경을 읽고, 함께 기도하고, 일상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데살로니가전서 2:8, 개역한글)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자훈련은 교재를 끝내는 일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일입니다.
4. 처음부터 다음 사람을 이야기하십시오
디모데후서 2:2의 목표는 또 다른 사람들입니다. 처음부터 이 말씀을 누구와 나누겠느냐고 물으십시오. 소그룹 리더를 세울 때도 다음 리더를 세우는 것까지를 그 역할에 포함하십시오. 배운 사람이 직접 가르칠 때 말씀은 그 사람 안에서 더 깊어집니다.

오늘 나에게 묻는 네 가지 질문
디모데후서 2:2의 네 세대를 따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 나에게 말씀을 맡겨 준 나의 바울은 누구입니까? 나는 지금도 그에게서 배우고 있습니까?
- 내가 지금 함께 걷는 나의 디모데는 누구입니까?
- 나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말씀을 맡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에게만 의지하게 하고 있습니까?
- 그 사람이 세울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상명령으로 이어지는 한 절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 개역한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은 한 세대에 끝나지 않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다시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람이 될 때 그 명령은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마태복음 28:20, 가르쳐 지키게 하라 참고). 디모데후서 2:2는 그 명령이 바울과 디모데의 시대에 어떻게 실제로 이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는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개역한글). 모두가 떠난 감옥에서 바울이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디모데후서 4:17, 개역한글)을 고백했던 것처럼, 한 사람을 세우는 긴 여정에서 우리도 혼자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 눈으로 4세대를 다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맡겼습니다. 오늘 내가 신실하게 한 사람에게 말씀을 맡기는 일은, 내가 다 보지 못할 다음 세대를 향해 뿌려지는 씨앗입니다.
누구에게 맡기시겠습니까?
참고 자료
- YouVersion — 디모데후서 2장 (개역한글)
- YouVersion — 디모데후서 1장 (개역한글)
- YouVersion — 디모데후서 4장 (개역한글)
- BibleHub — 2 Timothy 2:2 Interlinear
- BibleHub — Strong’s Greek 3908 (paratithēmi, 부탁하다)
- BibleHub — Strong’s Greek 3866 (parathēkē, 맡긴 것)
- BibleHub — 2 Timothy 2:2 Parallel Verses
- The Navigators — History